“정치적 야심 채우다 건강 악화…달리고 난뒤 인생 제2막 열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1-08-28 14:00 수정 2021-08-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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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열 원장이 사무실 근처 국회에서 달리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하며 건강이 악화돼 2000년부터 달리기 시작해 22년전째 달리고 있다. 그는 “살아온 생애 중 지금이 가장 건강하다. 이게 행복아니냐”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제15대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어요. 매번 2등에 그쳤습니다. 그 때까지 번 돈도 다 날렸지만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갑상선과 전립선에 문제가 생겼고 체중도 늘어 각종 성인병 증세가 나타났죠.”

최도열 국가발전정책연구원장(69)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뒤 2000년 중반쯤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였던 허갑범 연세대 의대 교수(별세)를 찾아갔다. 1980년대 전국 청년대표로 고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최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동교동계하고도 친했다. 그는 “허 교수께서 성인병엔 걸으면 좋고 달리면 더 좋다”고 했다. 그 때부터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무렵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깬 이홍열 경희대 교수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시작했다.

최도열 원장이 사무실 근처 국회에서 달리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하며 건강이 악화돼 2000년부터 달리기 시작해 22년전째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홍열 교수가 마라톤 교실을 시작한 2000년 7월 12일 찾아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태권도도 했고 특공무술도 했기 때문에 초급반이 아닌 중급반에 갔죠. 그런데 웬걸. 달리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 훈련 때 300m도 못가서 쓰러질 뻔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민주화 운동 할 때부터 끈기와 집념엔 자신이 있었다. 천천히 거리를 늘려갔다. 500m, 700m, 1km, 5km…. 결국 10km도 넘어 하프코스까지 달렸다. 이 교수는 “최 원장님이 처음엔 자세가 엉망이었지만 끈기와 집념이 대단했다. 바른 자세로 달리는 법을 알려줬더니 꾸준하게 노력해 지금은 엘리트 선수들만큼 자세가 아주 좋다”고 했다.

최 원장은 2003년 11월 열린 중앙마라톤에서 처음으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3시간 53분 53초. 개인 최고기록이다. 지금까지 50회 넘게 풀코스를 완주했지만 이 기록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첫 풀코스 완주 이후 즐기면서 달리기 때문에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도열 원장이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하며 건강이 악화돼 2000년부터 달리기 시작해 22년전째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달리면서부터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그 자리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일깨운다. 모든 관절을 돌려주고 스트레칭까지 마치고 발목 펌핑(아킬레스건을 톡톡 때려주는 동작)과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까지 한다. 스쾃은 하루 100~200개, 팔굽혀펴기도 100개 넘게 한다. 그는 “발목 펌핑 양쪽 600개는 10km를 달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22년을 관리하면서 달려서인지 아직 부상을 한번도 당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을 위해 즐겁게 달리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도 부상 방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매일 하루 3000보 이상 걷는다. 그리고 평일 2~3회 10~12km, 주말엔 15~20km를 달리고 있다. 한 달 평균 300km를 걷거나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대회가 없어졌지만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앞두고는 한달에 400km를 넘게 달린다.

달리면서 건강도 얻고 자신감도 얻었다. 건강검진에서 어떤 이상 증세도 나오지 않았고 체중도 10kg이 넘게 빠졌다. 한 때 85kg까지 나갔지만 지금은 70~72kg을 유지하고 있다.

“풀코스를 달리고 나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졌어요. 한 때 정치적인 야심도 있었지만 이젠 다 부질없다는 생각입니다. 있는 재산 다 날리고 건강까지 악화됐죠.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게 행복 아닌가요?”

최도열 원장이 월출산 천황봉에 올랐다. 그는 친구들과 한달에 1~2차례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 최도열 원장 제공.



최 원장은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도 오르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두 번은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새벽 일찍 나서 산을 오르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 아니면 전날 저녁 10시에 출발해 새벽 3, 4시에 산행을 하는 무박 등반도 한다. 건강을 되찾은 뒤 어떤 산도 쉽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설악산, 치악산 등 5대 악산을 포함해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

최도열 원장이 영축산 정상에 올랐다. 그는 친구들과 한달에 1~2차례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 최도열 원장 제공.

최도열 원장이 영남 알프스 간월산 정상에 올랐다. 그는 친구들과 한달에 1~2차례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50개 넘는 명산을 올랐다. 최도열 원장 제공.

“달리기로 건강을 되찾았지만 과거 시골에서 맘대로 뛰어 놀면서 키운 체력이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중고교 시절 경북 성주의 시골에서 하루 왕복 12km 걸어서 학교를 다녔죠. 지금은 아이들이 체육을 즐길 수 없는 환경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 원장은 국회의원 낙선한 뒤에는 공부에 전념했다. 민국당 사무총장도 역임한 그는 2005년 2월 숭실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박사학위를 받자 지상파 방송 뉴스에 나기도 했다. 이후 주로 학계에서 후진양성과 강연, 연구에 집중했다. 국가발전정책연구원은 국회 법인 1호로 국가 발전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교수 100여명이 비상근 근무하며 다양한 정책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사실 최 원장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국회 입법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고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지고 해서 청년 대표로 합류하게 됐다.

“정치는 완전히 포기하고 교육에 관심이 있어 대학 총장에 도전하려고 했죠. 총장을 하려면 부총장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기회 2번 있었지만 못했어요. 한번은 취임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10달 정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2010년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다시 망가졌다. 힘겨웠지만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덕택에 잘 버텼고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최 원장은 “몸이 사고로 망가지니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 달리듯 초보자의 자세로 천천히 거리를 늘려 원상 복귀했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풀코스를 4시간 30분 안팎에 달린다. 2019년 풀코스를 달린 뒤 공식 대회를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레이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도열 원장이 사무실 근처 국회에서 달리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연거푸 낙선하며 건강이 악화돼 2000년부터 달리기 시작해 22년전째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울트라마라톤은 입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홍열 교수가 42.195km 풀코스도 힘든데 울트라마라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풀코스 완주도 힘든데 굳이 50km 100km를 달릴 필요는 없다.

최 원장은 만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다. 그는 “100세 시대,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는 잡아야 80대에 하프, 90대에 10km를 달릴 수 있지 않겠나”며 웃었다. 그에게 이제 달리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또 다른 목표가 있을까? 철인3종(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수영 초보라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제가 실제로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아직은 젊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이유도 제가 아직 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정치적으로나 학자로 열심히 살았는데 뭐 크게 이룬 것은 없어요. 하지만 1년에 몇 번 피는 꽃도 있고 10년, 100년에 한 번 피는 꽃도 있잖아요. 전 즐겁게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이러다 한번은 꽃이 피지 않을까요?”

그는 달리며 또 다른 꿈도 꾸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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