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만 옭아매”…부산서 한밤 울분의 차량시위

부산=김화영 기자

입력 2021-08-26 15:06 수정 2021-08-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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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4명까지 모이게 허용하면서 밤에는 2명까지 제한하는 것이 방역에 무슨 효과가 있나.”

“손님 수를 제한하라면 그렇게 하고, 시간 맞춰 문 닫으라면 닫았다. 모든 지침에 묵묵히 따랐다. 근데 무엇이 나아졌나. 왜 우리는 갈수록 어려워져야만 하나.”

26일 0시가 가까워질 무렵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 인라인스케이트장(P2) 주차장에는 장대비를 뚫고 차량 80여 대가 모였다. 차량 운전자들은 운전석 창문을 내려 얼굴을 내밀고 “자영업자만 옭아매는 정부의 방역 정책을 이제는 수정할 때가 됐다.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함께 살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취재진을 향해 성토했다.





● “부산이 도화선, 전국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할 것”


26일 오전 1시께 전날 밤부터 대규모 차량시위에 나선 전국 자영업자들이 마지막 집결지인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인근에서 경찰 안전지휘를 받고 있다. 이번 부산 차량시위에 참가한 자영업자 차량은 경찰 추산 74대로 파악됐다. 2021.8.26/뉴스1
전국 호프집과 PC방 업주 등이 주축이 돼 꾸려진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부산에서 비수도권 첫 게릴라 차량 시위를 열었다.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비슷한 시위를 진행했지만 전국 방방곡곡으로 시위를 확산하기 위한 도화선으로 부산을 택한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전국 700만 중소상공인·자영업자의 코로나19 관련 공통 요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 자영업자들은 26일 경남에 이어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열 계획이다. 이후 수도권에서도 대규모 차량시위를 개최할 방침이다. 선술집을 운영하는 김모 씨(42)는 “한국 현대사 흐름을 바꾼 부마민주항쟁도 1979년 부산에서 일어나 경남 마산으로 옮아붙었다. 오늘 대다수가 익명 채팅방을 통해 이곳에 모인 서로 모르는 평범한 자영업자들이다”고 했다. 강대영 자영업자비대위 부산지부장은 “코로나19가 1년 6개월 넘게 지속 중인데 행정은 바뀌지 않으면서 자영업자에게만 자꾸 문을 닫으라고 한다. 제발 우리가 살 수 있는 생존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자영업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오후 9시 영업제한으로 막심한 피해를 겪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현 거리두기 단계 조정의 기준을 확진자 수에서 중증환자 수 등 치명률 중심으로 재편해달라고 했다. 또 △방역 위반 적발 때 즉시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폐지 △시설중심의 방역을 개인방역 중심으로 재편 △손실보상위원회에 당사자인 자영업자도 참여 △신속한 손실보상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찰과 충돌 없이 마무리



차량시위는 이날 오후 11시 부산시청이나 서면 등 부산 중심가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경찰에 모임 동선이 사전에 드러난 데다 심야시간 시민 불편을 끼칠 것을 우려한 시위 주최 측은 이날 오후 9시50분경 집결장소를 ‘삼락공원 P2주차장’으로 바꿨다.

경찰은 이날 11시 30분까지 모인 차량을 77대로 집계했다. 경찰은 “즉시 해산하라. 불응 때 감염병예방법과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경고방송을 5회 이상 내보냈다. 차량 보닛 위에 부착된 ‘이제는 거리두기 보이콧, 위드코로나’라는 플래카드를 제거하려고 했다.

이에 시위 주최 측은 14㎞ 떨어진 부산시청으로 차량들을 이동시켰다. ‘시속 30㎞ 속도를 유지하고, SOS 경적을 울려라’는 지침을 채팅방과 실시간 유튜브 방송으로 안내했다. 주요 길목마다 경찰이 지속된 차량의 흐름을 끊고, 빨간불에는 모두 멈추는 신호 지키기가 이뤄지면서 연속된 차량행렬이 없어 초반에는 시위 취지가 무색해보였다.


그러나 동서고가도로를 올라선 차량이 2차선 도로 중 2차로를 늘어서 서행하면서, 일렬로 비상깜빡이를 점멸하는 차량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주최 측은 “처음 집결지가 상습침수지역이다. 집결직전 폭우가 쏟아져 삼락공원으로 오지 않고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있다가 시위행렬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자영업자들이 나와 함께 했다. 650명 넘는 이가 시위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동서고가로에 처음 집결지에 없던 택시와 야채를 실은 1t 트럭도 비상깜빡이를 켜고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다. 동서고가로에서 내려 부산시민공원과 하마정을 거친 이들은 부산시청 뒤편 회전교차로를 돌아나가는 것으로 26일 오전 1시 시위를 마쳤다. 애초 부산시민공원 등에서 2차 집결하는 것을 검토해지만, 공통주택밀집지역이어서 시민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 실행하지 않기로 집행부가 결정했다. 시위 경험이 거의없는 자영업자들이 경찰 통제를 잘 따라 충돌 없이 이날 시위가 끝났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찰은 엄연한 불법 차량시위로 보고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산경찰청은 “집결하지 못하게 사전에 경고하고 해산명령을 내렸음에도 많은 차량이 모여 행진까지 강행한 것은 법 위반”이라며 내사에 착수해 관련자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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