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 법인 만들어 ‘공시가 1억 미만 아파트’ 투기성 거래 기승

최동수 기자

입력 2021-08-26 03:00 수정 2021-08-26 03:0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수도권과밀억제권역’ 밖 법인… 공시가 1억미만 주택 매입때
세금 적은 규제 빈틈 파고들어… 한 아파트단지 법인이 42채 매입도
6월 법인매수, 작년 8월보다 154%↑, “집값 조정땐 원주민 피해” 지적



#1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A아파트는 24년 된 1110채짜리 대단지다. 최근 3개월간 총 90건이 거래됐다.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18건)의 5배로 늘었다. 모두 공시가격 1억 원 미만 아파트로 부동산 법인이 유독 많이 사들인 게 특징이다.

#2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한 법인은 6월에 18평짜리 집 5채를 한꺼번에 샀다. 인천 강화군에 사무실을 둔 또 다른 법인은 지난달 현금 700만 원만 갖고 18평짜리 집을 전세를 끼고 매수했다. 두 법인의 대표는 모두 30대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법인 투자가 뜸하다가 6월 전후로 젊은 투자자들이 법인 명의로 매수하면서 거래가 갑자기 늘었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해 6·17대책과 7·10대책에서 부동산 법인 투자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런 규제로 법인의 부동산 매수가 크게 줄었지만 최근 법인을 통한 거래가 다시 늘고 있다. 법인을 통해 공시가격 1억 원 미만 아파트를 1년 미만 보유해 각종 세금을 줄이고 차익을 보는 사례가 많다. 개인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법인을 내세워 ‘규제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법인 통한 투기성 거래 다시 기승

25일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 따르면 올해 6월 1일부터 8월 23일까지 약 3개월간 A아파트에서 거래된 90채 가운데 42채를 법인이 사들였다. 매수한 법인은 총 34곳으로 소재지는 익산시 1곳을 제외하고 제주, 인천, 부산, 대구, 경기 화성, 용인 등 전국 21개 시군구로 나타났다. 외지인들이 원정 투자로 매수한 것이다.

법인 투자 증가세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 ‘월별 거래주체별 아파트 매매 거래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법인이 전국에서 매수한 아파트는 총 2954채로 법인 규제가 시행된 지난해 8월(1164건)보다 154% 늘었다.

주춤했던 법인 투자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건 올해 6월 1일부터 개인 다주택자의 양도세와 취득세, 종합부동산세가 강화된 영향이 크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유튜브 영상,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공시가 1억 원 미만 아파트, 1년 미만 단타 매매는 법인이 개인보다 유리하다’는 소문이 퍼진 데에 따른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 세무사는 “6월과 7월 부동산 법인을 설립하려는 개인들의 문의가 급증했다”며 “1주일 정도면 부동산 법인을 설립할 수 있고 비용도 50만 원 정도여서 법인 거래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실수요자와 지역 주민 피해 우려도

전문가들은 겹겹의 규제가 법인의 투기성 거래에 문을 열어줬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6월 1일부터 개인이 1년 미만 보유 주택을 팔 때 양도세율이 70%로 강화됐다. 반면 법인은 기본세율(10∼25%)에 20%포인트를 추가해 최고 45%를 내면 된다. 예컨대 1000만 원의 양도차익이 생기면 개인은 양도세로 700만 원을 내야 하는데, 법인은 450만 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개인에 대한 세율이 워낙 높다 보니 법인의 세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보이는 것이다.

취득세도 마찬가지다. 법인 취득세율은 주택 수 상관없이 12%지만, 수도권과밀억제권역(서울 전 지역, 인천 일부, 경기 13개 시) 밖에 사무실을 둔 법인이 공시가 1억 원 미만 주택을 매수할 경우에는 1.1%로 낮아진다. 실제 익산의 A아파트를 매수한 법인도 모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밖에 위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 투자하는 법인들은 종부세 과세 기준일인 내년 6월 1일 전에 팔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부세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단기차익을 노린 법인 투자가 늘며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단기차익을 노린 법인들이 앞으로 내놓는 매물은 원주민이 떠안을 확률이 높다”며 “집값이 흔들리면 원주민이 피해를 봐야 하고, 깡통전세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