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작품과 디제잉의 만남’…전시공간 변주로 부활한 작품들

파주=김태언 기자

입력 2021-08-24 13:59 수정 2021-08-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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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을 놓쳐 전시를 관람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었다면 작품을 구경할 기회를 날렸을 것이고, 작품 사진을 구했다 해도 갤러리 공간과 어우러진 작품의 분위기만큼은 느끼지 못했을 테다. 전시 공간이 다른 문화 공간으로 기록돼 사용된다면 어떨까? 전시는 끝났지만 그 공간이 재활용되면서 작품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23일 경기 파주시 갤러리박영에서는 약 한 달간 이어진 특별전 ‘ON SUBLIME’이 마무리됐다. 김동현·정재철 작가 2인전으로, 이란의 핸드메이드 페르시안 카펫과 두 작가의 회화 작품을 마주 놓아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전시장에서 작품은 철거됐지만, 10월 9일 다른 공간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온라인 EDM 페스티벌 ‘STAYHERE’이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999 프로젝트팀의 최우리 DJ(34)는 지난달 22일 갤러리박영에서 3시간가량 디제잉을 했다. 촬영본을 녹화해 페스티벌에 송출하기 위해서였다. 최 DJ는 촬영장 선정 이유로 작품 분위기를 꼽았다. 그는 “김동현 작가 작품이 굉장히 몽환적이고 반추상적인데, 제가 하는 음악인 ‘사이키델릭 트랜스’와 느낌이 비슷하다. 다른 분야의 예술이지만 닮았기에 함께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이키델릭 트랜스는 테크노 음악보다 빠른 템포와 켜켜이 쌓인 멜로디가 특징이며 그 분위기가 어둡고 자극적이다.

최 DJ 뒤로 놓인 김동현 작가의 작품 ‘Fake identity’(2020년)는 디지털 세계를 떠올리듯 푸르른 색감이 눈에 띈다. 실제 김동현 작가는 작업할 때 일렉트로닉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일렉트로닉 문화계에서 선호하는 화려한 색채들이 작품에 많이 반영됐다. 또 전자악기로만 구성된 일렉트로닉 음악에는 다양한 음이 겹쳐져 있는데, 실제 제 작품도 하나의 선, 면이 아난 겹겹이 쌓인 층이 캔버스 안에서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고 말했다.

작품과 함께 놓여있는 카펫도 인상적이다. 카펫은 두 작가의 작업 방식에 따라 다른 종류가 배치됐다. 정교한 장인의 카펫은 구상회화에 가까운 김동현 작가의 작품과, 도면 없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유목민의 카펫은 추상회화에 가까운 정재철 작가의 작품과 매치됐다. 정재철 작가의 작품 ‘Contradictory boundary’(2019년)는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듯 힘차게 그어놓은 굵고 뭉툭한 선의 생명력이 잘 느껴진다.


영상 속에서 부활한 작품들을 보면 공간 재활용으로 인해 작품 전시 기간은 늘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페스티벌이나 축제 등을 앞세우지 않은 일반 갤러리가 떠들썩한 공간으로 변주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안수연 갤러리박영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한 모든 예술인들의 힘든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예술의 경계를 지우고 복합예술의 의의를 되새겨보고 싶어 촬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파주=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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