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상관없이 덜덜덜… 절개 없는 초음파 수술로 ‘손 떨림’ 치료

홍은심 기자

입력 2021-08-25 03:00 수정 2021-08-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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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이은정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글씨를 쓰거나 키보드를 칠 때, 음료를 따를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덜덜 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떨림 증상은 손만 아니라 때때로 머리, 사지 등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생명에 영향을 주거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런 떨림 증상을 ‘본태성 진전(손 떨림)’이라고 한다. 특별한 원인을 알지 못해 ‘본태성’이라고 한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손 떨림 치료에 고집적 초음파 시스템 ‘엑사블레이트 뉴로(ExAblate Neuro)’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엑사블레이트 뉴로는 이스라엘 생명공학 기업 인사이텍이 개발한 최첨단 의료기기다. 국내에서는 휴온스가 유통한다. 진단이나 피부 미용에만 쓰이던 초음파를 뇌신경계 질환 치료에 접목해 두개골을 직접 열지 않고도 초음파를 이용해 뇌 병변을 치료할 수 있게 설계됐다.

전 세계적으로 엑사블레이트 뉴로를 이용한 치매, 파킨슨병, 악성 뇌종양 등 난치성 뇌질환 치료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은정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만나 본태성 진전과 엑사블레이트 뉴로에 대해 들어봤다.


▽홍은심 의학기자=
본태성 진전은 어떤 사람들에서 발병하나.


▽이은정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본태성 진전 유병률은 40세 이상에서 4% 정도다. 60세 이상에서는 5%에 달한다. 신경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은 증가한다.

본태성 진전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운동장애다. 구체적인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소뇌 위축과 소뇌 신경회로의 과항진이 나타나기도 한다. 뇌 조직 검사에서는 소뇌 주요 세포들의 감소가 확인된다. 떨림 외에 보행 장애, 안구운동 이상과 인지 기능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20, 30대 젊은층도 종종 손 떨림 증상으로 외래를 찾는다. 카페인이나 스트레스 등이 떨림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심리적으로 긴장할 때 증상이 심해진다. 무분별한 신체 떨림으로 인한 불편함은 심리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사회생활, 대인관계 등에서 불안이나 우울증까지 유발한다.


▽홍 기자=
어떻게 치료하나.


▽이 교수=
1차 치료는 약물치료다. 하지만 3분의 1 이상의 환자는 충분한 약물 치료에도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낄 정도의 손 떨림 증상을 호소한다. 약물 부작용 때문에 더 이상 용량을 늘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단기간에 나을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서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게 환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약물 치료는 졸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홍 기자=
약물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은 어떻게 하나.

▽이 교수=수술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본태성 진전 치료에 가장 보편적인 수술 방법은 뇌심부 자극술이다. 두개골을 열어 뇌 안에 전극을 삽입하고 몸속에 장착한 소형 배터리에서 공급받은 전력을 이용해 뇌의 병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이다. 빈도가 높지는 않으나 출혈과 감염의 위험이 있고 주기적인 배터리 교체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고집적 초음파를 사용한다. 비침습적 무혈 수술로 절개가 필요 없다. 초음파 에너지가 두개골을 투과해 병소에 집적된다. 국소적으로 발생한 열이 떨림 증상을 유발하는 부위의 뇌 조직을 변성시켜 증상을 치료한다.

손 떨림을 치료하는 고집적 초음파 시스템 ‘엑사블레이트 뉴로’.
초음파 수술은 MRI실에서 이뤄진다. MRI 검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술 부위를 모니터링해 보다 정밀한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 시간이 짧고 일상생활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어 환자의 심리적 부담감도 적다. 보통의 뇌수술과 달리 전신마취를 할 필요가 없고 출혈과 감염의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이물질을 몸 안에 삽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홍 기자=고집적 초음파는 주로 피부 미용이나 요로결석, 전립샘암 치료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뇌 질환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긴가.

▽이 교수=과거에는 초음파가 두개골을 투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뇌신경계 질환에는 진단 목적으로만 사용했다. 그러나 초음파 변환기 기술의 발달로 충분한 에너지가 뇌 안에 전달될 수 있게 됐고 뇌신경계 질환 치료에 사용이 가능해졌다.

본태성 진전이나 파킨슨병 등 운동 장애를 치료하는 것 외에도 중추 신경계로의 약물 전달 촉진, 신경 기능의 활성이나 억제 등 다양한 효과를 나타낸다. 그동안 뇌신경계 질환의 약물 치료가 제한적인 효과만 나타낸 이유가 뇌-혈관 장벽에 막혀 충분한 농도의 약물이 뇌 안으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음파가 뇌-혈관 장벽을 일시적으로 개방시켜 뇌 안으로 약물 전달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전임상 시험에서도 항암제 전달을 높여 악성 뇌종양 치료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나 타우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축적돼서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초음파를 통한 뇌-혈관장벽 개방이 치매 약물 전달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단백질 제거를 촉진하는 게 확인됐다. 이에 대한 임상시험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세포 재생이나 유전자 치료를 병행, 적용한다면 알츠하이머 병,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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