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미술관

김태언 기자

입력 2021-08-19 03:00 수정 2021-08-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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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갤러리 가기 힘든 시대… 빌린 원화-프린트 작품 집에 전시
3개월마다 작품 바꿔 새로운 느낌… 홈아트 구독자 1년새 70% 늘어


자택 내 전시한 마치야마 고타로 작가의 ‘Empty’(왼쪽)와 ‘Hello’(가운데), 반나이 다쿠 작가의 ‘Snow Fun’(오른쪽)의 프린트 작품. 핀즐 제공

홍보대행 업무를 하는 프리랜서 배루디아 씨(32·여)는 요즘 제2의 직업을 가진 것 같다고 한다. 바로 큐레이터다. 그가 꾸미는 공간은 자신의 집. 2019년 하반기부터 원화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는 3개월에 한 번씩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 집에 배치하면서 새로운 전시장에 온 기분을 느낀다. 신혼집 인테리어를 위해 구독한 서비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평소 다니던 미술관에 가지 못하면서 만족도가 더 커졌다. 배 씨는 “미술 작품으로 집 곳곳을 장식해 놓으면 재택근무나 자가 격리로 답답하게 여겨졌던 집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의 전시, 이른바 ‘갤러리 같은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가길 조심스러워하면서 홈 아트를 즐기는 것. 이에 더해 미술관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기획전보다 각자의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의 특성이 홈 아트와 맞물리면서 지난해부터 유행했던 원화 렌털 서비스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원화가 아닌 프린트된 작품도 인기를 얻고 있다.

홈 아트가 주는 만족도는 꽤 커 보인다. 원화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픈갤러리’는 올 상반기 구독자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70% 늘어 총 8만 명가량 된다고 밝혔다. 3개월마다 작품이 바뀌기 때문에 매번 다른 미술관을 방문하는 느낌을 주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고 집에 오래 머물면서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덜 유명하더라도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본인의 취향을 찾기 위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원화 렌털 서비스 ‘오픈갤러리’를 통해 신미란 작가의 ‘추봉도’(2008년)를 빌린 배루디아 씨의 집. 배 씨는 “그림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져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배루디아 씨 제공
물리적 심리적 제한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홈 아트의 장점으로 여겨진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제 미술관을 집으로 불러오면 되는 시대다. 미술관에서는 마실 수 없는 커피나 와인과 함께하는 감상 시간이 즐겁다. 코로나19로 통 외출을 못하시는 부모님께도 선물해 드려야겠다. 조금이나마 숨통이 틔실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실제 각종 SNS에 언급되는 지인 선물 추천 목록에도 그림 정기구독 상품이 오르내리고 있다.

원화가 아닌 작품도 수요는 많다. 구독자가 매월 2만 원 정도를 내면 해외 작가의 아트프린트 작품 한 점(종이 A1 사이즈)을 배송해주는 플랫폼 ‘핀즐’은 지난해 대비 구독자가 500명 늘었고 매출도 2배 이상 성장했다. 이는 쉽고 가볍게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진준화 핀즐 대표는 “원작이 주는 감동이 큰 건 사실이지만 비싼 데다 전문 설치 기사가 집을 방문해야 한다. 20, 30대가 고객층의 주를 이루는데,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언택트로 해결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홈 아트 트렌드는 새로운 관람 문화로 이어질까. 전시기획사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시대에만 통하는 서비스는 아닐 것으로 전망한다. 전시기획사 로드의 홍용상 기획팀장은 “SNS에 작품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신의 취향을 기록해 온 세대에겐 소비 욕구가 있다. 포스터 등 미술품의 대안적 소비 시장이 코로나19 시대에 형성된 만큼 홈 아트는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며 “이는 갤러리와 소수 컬렉터에 의존하고 있는 현 국내 미술시장에서 소외된 다수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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