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병풍… 무더위마저 한 폭의 그림 같구나

글·사진 단양=안영배 기자· 풍수학 박사

입력 2021-08-14 03:00 수정 2021-08-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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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여름 힐링명소 단양

충북 단양군 단양8경 중 하나이자 국가명승 제47호로 지정된 사인암. 검붉은 암벽 아래 남조천에서는 물놀이가 한창이다. 암벽 왼쪽의 건물은 나옹 선사가 창건한 청련암이다.

《상속세 문제로 세간의 화제가 된 삼성가의 미술품 컬렉션 중 ‘병진년 화첩’(보물 782호)에는 ‘사인암도(舍人巖圖)’라는 그림이 있다.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다. 우람하면서도 장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계곡물이 유유히 흐르는 이 그림에서는 기운이 살아 꿈틀거리는(氣運生動) 듯하다. 김홍도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현지에서 열흘 남짓 머무르고 1년여 동안 마음에 담아둔 끝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명작의 모델은 충북 단양군 단양8경 중 하나인 사인암(명승 제47호). 추사 김정희도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찬탄했던 곳이다. 사인암은 여름 무더위를 식히는 계곡 물놀이 장소이자 명당 기운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힐링 명소로 부상했다. 단양 여행은 사인암에서 시작하기를 추천하는 이유다.》

○‘여름 보양’ 명소 사인암

오랜 세월 풍화가 빚어낸 사인암은 50m에 이르는 암벽이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형태다. 마치 누군가가 암벽을 네모지게 조각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듯한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절경과 함께 암벽 자체가 명당 혈(穴)을 이루고 있다. 조선의 풍류객들이 암벽 이곳저곳에다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음으로써 이곳과 하나됨을 느끼고 싶어 했을 만하다.

사인암 밑으로는 맑디맑은 남조천(운계천)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살갗이 따가운 여름 햇볕을 식히려는 물놀이 피서객들로 계곡은 다소 붐볐다. 물안경을 쓰고, 고무보트를 타며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피서를 즐기는 동시에 사인암 암벽의 명당 기운까지 누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을 편안하고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방출되는 곳이니, ‘여름 보양’으로 제격이다.

사인암 아래 물가 편편한 너럭바위 두 곳에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각각 새겨져 있다. 바둑판이 그려진 너럭바위를 ‘난가상(爛柯牀)’이라고 표기한 것도 재미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爛柯) 평상(牀)’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세월을 즐기는 신선의 공간임을 비유한 듯하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현세와 동떨어진 이상적인 공간)의 세계인 사인암은 고려 때부터 이미 소문났다. 단양이 고향인 고려 말 유학자 우탁(1262∼1342)도 이곳을 즐겨 찾았다. 우탁은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시조 ‘탄로가’의 저자다. 특히 역학(易學)에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여 ‘역동(易東)선생’으로도 불렸다. ‘고려사’에서는 우탁이 ‘역학에 조예가 깊어 점을 치면 틀림이 없었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후에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임재광이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을 지낸 우탁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사인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사인암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남조천을 가로지로는 출렁다리를 건너가 암벽 뒤쪽까지 챙겨봐야 한다. 암벽 틈에 숨은 듯이 들어선 작은 전각, 삼성각이 있기 때문이다. 청련암의 부속 건물인 삼성각은 원래는 서벽정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우탁 못지않게 단양을 사랑한 조선의 문인화가 이윤영(1714∼1759)이 은거하던 곳이다.

삼성각을 둘러싼 암벽에는 이윤영이 남긴 각자(刻字)가 있다.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遯世無悶·홀로 서도 두렵지 않고 세상을 등져도 걱정이 없다)’이라는 전서체 글씨인데 난국을 극복하는 지혜를 알려주는 괘를 가리킨다. 이 터는 사인암의 강력한 혈 기운을 직접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인암 문화관광해설사는 “현재도 많은 사람이 기도나 명상을 하기 위해 삼성각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선계로 통하는 석문

도담삼봉. 남편봉(가운데), 처봉(오른쪽), 첩봉(왼쪽)으로 불린다.
사인암을 충분히 음미한 후 또 다른 여름 보양 명소로 도담삼봉(국가명승 제44호)과 석문(국가명승 제45호)을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단양8경에 속하는 곳으로 서로 지근거리에 있다.

먼저 도담삼봉은 단양강(남한강)이 휘돌아 나가면서 이룬 깊은 못에 세 봉우리(남편봉, 처봉, 첩봉)가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는 형태다. 배신한 남편이 미운 처봉은 남편봉을 외면한 반면에 첩봉은 남편봉에게 교태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라는 설명이 재미있다.

도담삼봉은 단양8경 중 으뜸으로 손꼽힐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정선, 김홍도 등 조선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단골 모델로 등장했다. 한편으로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호인 ‘삼봉’과 이름이 같아서 정도전 관련 얘기가 전해 오고 있으나 확인할 순 없다. 그 대신 퇴계 이황, 농암 김창협 등 조선의 대학자들은 이곳을 신선 세상과 연결시킨 시를 많이 남겼다.

이곳의 안내 표지판은 도담삼봉이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봉래, 방장, 영주 삼신산(三神山)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남편봉 혹은 장군봉으로 불리는 가운데 봉우리는 명당 기운이 서려 있고 그 한쪽 귀퉁이에는 이를 즐길 수 있도록 정자가 세워져 있다.

뻥 뚫린 동굴 사이로 남한강변 마을이 보이는 석문(국가명승 제45호).
삼신(三神)의 흔적은 이웃한 석문(石門)에도 있다. 석문은 석회동굴이 무너진 뒤 동굴 천장 일부가 구름다리 모양으로 남은 카르스트 지형이다. 뻥 뚫린 문을 통해 보이는 남한강과 그 건너편 도담마을 풍경이 마치 사진 프레임처럼 다가온다. 추사 김정희는 ‘백 척의 돌 무지개가 둥그렇게 열렸네(百尺石霓開曲灣)’라는 시로 아름다운 석문을 찬탄했다.

이와 함께 석문 바로 아래쪽에는 마고할미가 살았다는 동굴이 있다. 마고할미는 전통신앙에서 등장하는 삼신할머니를 가리킨다. 석문의 툭 트인 공간을 바라보다 보면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운도 느껴진다. 석문과 얽힌 마고할미 전설 때문인지 소원을 빌기 위해 석문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감록’ 십승지지에서의 하룻밤

소백산 자연휴양림에 조성된 ‘정감록 명당체험마을’.
단양은 아름다운 명소와 함께 좋은 기운을 갖춘 명당들이 곳곳에 있다. 이런 명당 기운을 충분히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룻밤 정도 묵어가는 체류 관광이 좋다.

단양 북동쪽 소백산자연휴양림 내에는 ‘정감록 명당체험마을’(영춘면 하리방터길)도 있다. 15개 동으로 구성된 숙박시설인데,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 등장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전쟁과 질병 등 환란을 피하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개 지역)를 스토리텔링해 지어놓은 곳이다. 웅장한 소백산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풍수 감상에도 좋다. 숙소는 독채형으로 구성돼 코로나19로부터 좀 더 안심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몇몇 숙소는 명당 혈에 자리 잡고 있어서 명당 기운을 체험하기에도 좋다.




○둘러볼 만한 곳

만천하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단양읍 전경.
△만천하스카이워크: 남한강 수면에서 90m 높이의 수직절벽 위에 세워진 만천하스카이워크 ‘만학천봉전망대’에서는 단양읍과 주변에 펼쳐진 소백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중유리가 깔린 전망대 바닥 아래로는 남한강 물이 넘실거리는데, 살얼음판 위를 걷듯 가슴이 울렁거리고 조마조마하다. 전망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총길이 980m의 집와이어를 이용해 활강하듯이 내려갈 수 있다. 또 다른 익스트림 체험 시설인 알파인코스터(모노레일 썰매)도 이용할 수 있는데, 운행 여부를 미리 문의하는 게 좋다.


수양개빛터널 내에서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빛 축제’.
△수양개빛터널:
일제강점기에 단양의 석회석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된 길이 200m, 폭 5m의 지하 시설물이다. 1985년까지 철도로 이용하다가 방치된 후 수양개빛터널이란 관광 시설물로 재단장됐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설치한 터널을 따라가면 환상 속 동화마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단양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이름났다.




글·사진 단양=안영배 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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