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해지는 독립운동 자취, 살려놓고 싶었다”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8-12 03:00 수정 2021-08-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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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국서 유적-후손 촬영 김동우씨 “인도서 광복군 훈련한 역사적 장소
표지판 하나 없이 방치돼 있어 충격” 그간의 기록 지난달 서적 출간 이어
부산서 국내 사적-후손 사진전 열어


독립운동가 김익주 선생의 손자 다비드 김 씨(위 사진)와 이윤상 선생의 딸 레오노르 이 박 씨(아래 사진). 김동우 사진가가 2018년 멕시코와 쿠바를 방문해 촬영한 사진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진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이 반투명하게 보이도록 촬영했다. 김동우 사진가 제공
사진 속 주인공은 사라지려는 찰나에 포착된 듯 반투명하다. 뒷배경인 벽이나 의자는 이런 인물에 투영돼 훤히 보인다. 김동우 사진가(43·사진)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사진을 찍으며 의도한 공통된 특징이다.

“독립운동가나 후손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아예 지워졌죠. 역설적으로 흐릿해져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10일 만난 김 사진가는 2017∼2019년 멕시코, 쿠바, 미국 등 10개국을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과 최근까지 국내에서 담아낸 후손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김동우 사진가



김 사진가의 직전 직업은 여행작가였다.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다 2012년 퇴사한 뒤 꿈꾸던 세계일주를 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책도 냈다. 여행에 맞춰져 있던 렌즈 초점이 독립운동으로 옮겨간 건 2017년 봄. 당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보자’는 큰 그림만 그린 채 출국했다.

“인도 여행 중에 문득 과거 지인에게서 ‘카자흐스탄에 홍범도 장군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델리에도 뭔가 있는지 찾아봤죠. 있더라고요. 충격이었죠.”

그를 놀라게 한 건 1943년 한국광복군 9인이 영국군 요청으로 ‘인면전구공작대’를 조직해 인도로 건너간 뒤 훈련했던 델리 레드포트였다. 역사적 장소였지만 표지판 하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여행 주제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서’로 정해졌다. 그는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자취가 있다는 것도, 이것이 방치돼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2018년 멕시코로 간 그는 대사관과 한인회 등을 수소문한 끝에 김익주 선생(1873∼1955)의 묘소와 손자의 사진을 찍었다. 김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멕시코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낸 한인 중 한 명. 그는 “저도 그때 김 선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이처럼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현재를 담아 미래에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사명감으로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작업 비용은 개인 경비로 충당했다.

김 사진가는 그간 국외 독립운동에 대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을 묶어 지난달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다. 3일부터는 부산 사상구에 있는 부산도서관에서 ‘관심없는 풍경, 뭉우리돌을 찾아서 부산경남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해 1∼7월 부산 경남 일대를 돌며 촬영한 독립운동가 후손 및 사적 사진 80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마지막 사진으로는 안중근 의사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성녀 선생의 묘 사진이 걸렸다.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공원묘지 내에 있는 묘다. 김 사진가는 “안 선생의 묘가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풍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한 건 과거를 제대로 봐야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겁니다. 역사는 미래로 나가는 열쇠라는 것, 그러니 기억에서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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