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힘들다”…식자재값 급등에 자영업자·급식소 속앓이

오승준 기자

입력 2021-08-10 19:44 수정 2021-08-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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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News1

“식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본사 지침 상 음식값을 올릴 수도, 식재료를 바꿀 수도 없어요.”

서울 관악구에서 양식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김모 씨는 기자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최근 본사에 메뉴를 조정하고, 식자재 거래처를 바꿀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본사는 식자재 거래처와 메뉴 가격을 기존대로 유지하라고 통보했다. 김 씨는 “3000원 주고 사던 계란 1판(30알)을 요즘엔 만원 주고 산다. 계란 사는데 일주일에 40만 원 넘게 쓴다”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은데 허용이 안 된다”고 했다.

●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자영업자 이중고
식자재 값이 최근 급등해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취재팀이 서울 강동구와 종로구, 관악구 일대 음식점 15곳을 둘러본 결과 업주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장사에 제약이 많은데 식자재 값까지 올라 더는 버티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특히 불만을 토로한다. 가맹점은 본사에서 정해준 조리법과 가격을 그대로 따라야 하고, 식자재도 본사가 지정한 도매상에서 사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 그에 따른 비용 상승을 가맹점주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종로구에서 프랜차이즈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42)는 “본사에서 지정한 거래처의 야채 가격이 비싼 것 같아 다른 업체에서 저렴하게 구매했다가 본사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본사에서는 경고가 누적되면 계약을 해지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 프렌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고기의 숙성 정도나 품종 등을 통일시켜야 개별 가맹점 음식의 품질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특정 식자재 업체와 계약을 맺는다”며 “소스에 들어가는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면 가맹점이 지불해야 할 소스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일반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들 중에는 식자재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가격을 인상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동작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박모 씨(45)는 “채소와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 제육볶음, 돼지불고기 등 메뉴를 1000원씩 인상했다”며 “안 그래도 요즘 매출이 너무 줄어서 고민이 되긴 했는데 가격을 안 올리면 도저히 운영이 안 될 거 같아 부득이하게 인상했다”고 했다.

● “반찬 4개서 3개로 줄여야” 급식소도 고민
“생닭은 언감생심이죠. 냉동 닭가슴살도 30% 넘게 올랐어요.”

말복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노인 무료 급식소 사회복지원각(원각사)에서 만난 강소윤 씨(55)는 최근 무료급식용 식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급식소에서는 복날 때마다 삼계탕을 제공해왔는데 올해는 냉동 닭가슴살 마저 1kg에 6000원으로 지난해보다 33%나 올랐다고 했다. 강 씨는 “마늘, 대파 등 채소 가격도 많이 올라 최소한으로 주문해 쓰고 있다. 비용이 너무 많이 올라 반찬 구성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무료급식소인 ‘행복한세상 복지센터’ 센터장 박세환 씨(45)도 두 달 전부터 계란 반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단백질이 들어간 계란이나 생선, 고기 반찬을 넣고 싶은데 그것도 힘든 상황이다. 반찬도 4개로 구성해 나갔는데 3개로 줄이는 걸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학교 영양사들도 고민이 깊다. 서울 한 고교 영양사 권모 씨(25)는 “8월 식단은 어떻게든 짰는데 식재료 인상분이 적용되는 9월이 걱정이다. 3500원 내에서 한 끼 식단을 짜야 해 빠듯하다. 웬만한 반찬에서 달걀은 빼고 두부 등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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