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디지털-아날로그… ‘벽’이 사라진다

이지윤 기자

입력 2021-08-09 03:00 수정 2021-08-0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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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소비혁명, 뉴커머스가 온다]〈7〉구분 무의미한 ‘무경계 소비’
3차원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서 명품 구입-제품 간접체험 인기
스마트워치 등 첨단 선호 MZ세대, 필름-LP 등 과거 제품에도 열광
제조-유통-물류 산업경계도 흐려져


구찌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가상 제품 60여 종을 출시했다. 가상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아바타에 옷 등을 입혀볼 수 있다. 네이버제트 제공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박성현 씨(25)는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구찌 가상 컬렉션을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캡처 사진을 올리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현실에선 엄두도 못 내는 명품을 사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직장인 석지훈 씨(36)는 요즘 로봇청소기에 청소를 맡겨놓고 필름카메라로 일상을 찍는다. 그는 “최신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그리워 아날로그 제품을 산다”고 말했다.

○ 가상-현실 경계 허문 ‘메타버스’ 시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방식이 확산되면서 소비생활 전반에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소비혁명이 단순히 빠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과거와 현재, 제조와 유통 간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가상현실(VR)기술로 가상 백화점을 구현했다. 일부 VR 매장에서는 온라인몰고 ㅏ연계해 상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최근 소비의 흐름인 ‘무경계 현상’을 잘 보여준다.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은 단순 교류를 넘어 쇼핑, 회의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올해 디올과 구찌는 제페토와 손잡고 가상 신제품을 출시했고 현대백화점은 VR백화점을 선보였다.

직장인 이유경 씨(24·여)는 “메타버스에서는 나와 닮았으면서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메타버스는 온라인의 편리함과 오프라인 경험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VR 기술을 활용해 캠핑을 간접 체험하고 용품을 살 수 있는 메타버스 쇼핑 콘텐츠를 선보였다. 롯데홈쇼핑 제공
교보증권은 관련 시장 규모가 2030년 1770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원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기술에 대한 도전 욕구가 높은 국내 소비자 특성상 메타버스도 머잖아 모든 연령대가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날로그 기술, 체험 중시하는 젊은층에 어필
요즘 소비자들은 최신 기술 못지 않게 과거 기술에도 주목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하이테크에 비해 기술 수준은 낮지만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이른바 ‘로테크(low-tech)’ 제품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바이브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후 ‘사고 싶은’ 물건 상위 30위에는 애플워치(4위), 아이맥(5위), 폴라로이드(3위), 턴테이블(8위)이 올랐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워치와 폴라로이드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이 각각 39%와 49%였다. 최신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워치와 과거 기술을 대변하는 폴라로이드가 주력 상품으로 동시에 소비되는 게 최근 시장의 흐름이다.

하이테크만큼이나 로테크도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3년간 LP 구매 고객 중 2030세대 비중이 절반 이상이었다. 최근 무선 이어폰과 LP 2장을 구매한 이형석 씨(29)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어 신형 이어폰을 갖고 싶었다”면서도 “디지털 음원과 달리 LP는 ‘만질 수 있는 음악’이라 소장용으로 샀다”고 말했다.


여기엔 ‘콘택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향수도 소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언택트에 지친 사람들이 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행복했던 과거를 느끼려는 것”이라며 “체험을 즐기는 젊은층에게 ‘보고 만질 수 있는’ 아날로그 기술은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의미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조-유통-물류 간 경계도 흐려졌다. 제조부터 물류까지 전 역량을 갖춘 플랫폼 공룡의 등장에 유통·제조업계가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한국야쿠르트와 현대백화점이 라스트마일 물류에 뛰어들었다. 이강욱 BCG(보스턴컨설팅그룹) 유통소비재 부문 파트너는 “대형화하는 플랫폼에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면 유통·제조업은 직접 배송, 개인 맞춤형 서비스 등으로 기존 가치사슬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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