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차장님도 반바지네… 남자들의 ‘짧아진 출근길’

김하경 기자 , 이지윤 기자

입력 2021-08-07 03:00:00 수정 2021-08-07 13: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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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리스 붐’ 타고 남성 반바지 인기
“처음 도전할 때는 망설였지만 의외로 주변 아무도 신경 안써”
20대는 물론 40대초 간부도 착용
“다리 길어보여” 짧은 바지 인기… 빨강-노랑 등 색깔 다채로워져


펜디·엠비오 제공

국내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민성 씨(32)는 3년째 여름마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2018년 입사할 때만 해도 차마 하지 못했던 행동이다. 회사에서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차림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 남성 직장 상사가 반바지를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김 씨는 “입사 2년 차 들어 반바지에 처음 도전할 때도 주변 눈치를 많이 봤는데 우려와 달리 주변에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이후론 여름마다 즐겨 입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철 출근 복장을 간소화하자는 논의는 10여 년 전부터 이뤄졌다. ‘쿨비즈룩’이라는 이름의 반팔셔츠와 노타이 등 간편한 옷차림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반바지만큼은 쉽사리 정착되지 못했다. ‘반바지는 격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런데 그 흐름이 최근 빠르게 바뀌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남성 반바지 판매량이 급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 폭염 속 ‘젠더리스 붐’ 타고 남성 반바지 인기

6일 G마켓에 따르면 올 6, 7월 남성 반바지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반바지의 인기는 운동이나 여가생활을 할 때뿐 아니라 출근 복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따르면 뉴욕 컨템포러리 브랜드 ‘띠어리’와 네덜란드 남성복 브랜드 ‘수트서플라이’의 올해 남성 반바지 신상품 매출은 지난달 1∼25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6%, 20% 신장했다.

최근 남성 반바지 판매량 증가에는 무더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재택근무 활성화 등과 함께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 트렌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젠더리스 패션이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넓게는 국경, 인종, 나이의 경계까지 허무는 것도 포함된다.

이미 패션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젠더리스 패션이 대세로 자리 잡아 왔다. 프라다는 202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짧은 길이의 바지(shorts)에 미니스커트(skirt)를 덧댄 ‘스코트(Skort)’를 선보이기도 했다. 펜디 2022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는 여성복으로 여겨져 왔던 크롭톱, 일명 배꼽티까지 등장했다.

젠더리스 패션을 즐기는 스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6월 공개된 방탄소년단 ‘Butter’의 싱글 앨범 콘셉트 포토에서 지민은 짧은 반바지 위에 킬트(스코틀랜드 전통의상으로 남성이 입는 스커트)를 입고 페이크 퍼 부츠를 신은 스타일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젠더리스 트렌드가 문화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남성 반바지 패션 역시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패션디자이너인 간호섭 홍익대 미술대 교수는 “바로크 시대에는 남성이 반바지를, 여성이 긴 치마를 입었다가 산업화가 되면서 오히려 남성이 긴바지를 입고 여성이 종아리를 드러냈다”라며 “남성 전유물이었던 반바지가 여성의 전유물이 됐다가 성과 나이 구분이 없어진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같이 입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3인치 쇼츠 등 갈수록 짧고 과감하게

젠더리스 패션 확산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남성 반바지는 갈수록 더 과감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7인치 기장의 반바지가 인기였다면, 올해는 5인치의 짧은 기장이 유행이다. 짧은 반바지는 시원할 뿐 아니라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해 체형을 보완해 주는 효과가 있다.

색상도 검은색이나 네이비, 베이지 등 무난한 색상에서 다채로워지고 있다. 예컨대 수트서플라이는 무릎 위 짧은 기장과 원턱, 밑단 턴업을 적용한 ‘베닝턴 쇼츠’를 선보였다. ‘슬로웨어’는 팬츠라인 인코텍스를 통해 화이트, 베이지, 레드, 옐로 등의 다채로운 컬러의 반바지 상품을 내놨다.

특히 운동하는 남성들 사이에서는 남성용 쇼츠라 불리는 3인치의 짧은 반바지도 인기다. 각종 스포츠 브랜드뿐 아니라 요가복 브랜드 ‘젝시믹스’도 남성용 3인치 쇼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러닝 쇼츠를 비롯해 스포츠 쇼츠가 대중화되면서 일상복으로 입는 반바지 길이도 짧아졌다”라며 “오랜 집콕 생활로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재택근무로 근무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과감하게 짧아진 남성 반바지 수요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 단순한 복장코드 넘어 ‘자율성’의 상징

반바지 위상이 재평가되고 있다 해도 근무복으로 반바지를 택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대기업 직원 A 씨(41)는 “사내 규정에는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복장 자율화’라고 돼있지만 외부 미팅에 나가면 반바지를 입은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자유로운 복장을 달가워하는 임원도 별로 없을 거란 생각에 늘 긴바지를 입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성 반바지에 ‘자유로움’이라는 의미가 내재돼 있는 만큼 반바지 착용에 얼마나 개방적인지에 따라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국내 한 대기업 직원인 박승연(가명·31) 씨는 매년 여름 출근할 때마다 반바지를 입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직원뿐 아니라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과장과 차장급까지도 반바지를 입고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박 씨는 반바지 착용의 장점으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장 먼저 꼽았다.

“다른 회사 다니는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래들 중 반바지 입고 출근하는 비율이 30%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좀 더 수평적이고 깨어있는 조직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전문가들도 사내 반바지 문화 확산이 기업 이미지나 조직 문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바지 허용은 단순히 복장 코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내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상징적인 지표”라며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실용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1990년대 이후 생들에게 의미 있게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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