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부동산정책의 막장, 홍남기의 공포 마케팅

천광암 논설실장

입력 2021-08-02 03:00 수정 2021-08-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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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도 대책도 없는 황당 대국민담화
‘부동산 비극’의 뿌리는 정부 무능
투기·기대심리 탓은 책임 떠넘기기
내로남불식 ‘상투론’ 누가 공감하겠나


천광암 논설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8일 국토교통부 장관, 금융위원장, 경찰청장과 함께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는 반성도, 대책도, 비전도 없었다. 한마디로 뜬금없었다. 주택시장을 “공유지의 비극”에 비유한 것도 실소를 자아냈다. 형법에 주거침입죄까지 둬서 보호하는, 중요한 사유재산인 주택을 놓고 공유지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굳이 공감 포인트를 찾자면 현 주택시장 상황이 ‘비극’이라는 점 정도다. 이마저도 비극을 낳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대목에 이르면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힘으로 주택수급, 기대심리, 투기수요, 정부정책을 꼽았다. 그러면서 주택수급과 정부정책은 문제가 없고 기대심리와 투기수요가 문제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과연 그런가.

정부의 무능은 숱한 통계는 차치하고,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말에서도 확인이 된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전부가 아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3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부동산정책 관련 질책에 “방법이 있다면 정책을 훔쳐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도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전세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추가 대책이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특출한 대책이 있으면 정부가 다 했겠죠”라고 말했다. 무능에는 약도 없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투기 탓은 과장이 심하다. 투기는 당연히 엄단해야 할 대상이지만,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정부가 ‘실거래가 띄우기’를 근절하겠다며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전국의 아파트 거래 79만 건을 뒤져 찾아낸 사례는 겨우 12건에 불과했다. 마치 미꾸라지 몇 마리가 전체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것처럼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

기대심리에 관한 한 정부는 거론할 자격조차 없다. 현재의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부추긴 주요인 중 하나가 ‘호언장담→정책 실패’의 반복으로 인한 학습효과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현미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26일 국회에서 “30대의 ‘영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발언이 나올 무렵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전국 아파트 값(KB국민은행 기준)은 18.4%나 올랐다. 이러니 ‘정부 말만 듣고 있다가는 벼락거지 아니면 바보 된다’는 불신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빈약한 밑천만 드러내 보일 게 뻔한 대국민 담화를 홍 부총리가 무슨 자신감으로 자처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홍 부총리의 최근 행보와 담화의 앞뒤 맥락을 보면 집값 거품론 또는 상투론 띄우기에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담화에서 자신이 최근 여러 차례 주택 가격 조정 가능성을 경고한 사실로 운을 뗀 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서울 아파트 등 주택 가격이 9∼18%의 큰 폭 조정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공포에는 공포로, ‘패닉 바잉’을 ‘폭락 공포’로 잠재우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홍 부총리의 집값 상투론이 설득력과 파급력을 가지려면, 가까이에 있는 고위 공직자나 여당 의원들이 솔선해서 갖고 있는 집을 처분해야 한다. 정말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무거운 종부세·재산세를 물어가면서 집을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 설명대로라면 집을 처분한다고 해서 전세난·월세난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임대차 갱신율도 크게 높아지고 임차료 인상률도 안정돼서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선뜻 집을 팔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 그런가.

문재인 정부는 민간 재개발·재건축에 융단폭격식 규제를 가하고, 1주택자에 대해서도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등 25번이나 고강도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17년 5월 6억635만 원에서, 지난달 10억2500만 원으로 69% 폭등했다. 하물며 말뿐인 내로남불식 상투론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부총리가 나서서 ‘공포 마케팅’을 하는 구차스러운 모습은, 부동산정책이 더 이상 갈 데 없는 막장까지 왔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망가진 수급 기능을 복구시키는 데만도 정부가 할 일이 태산이다. 다주택자 탓, 투기 탓도 더는 식상하다. 지지지지(知止止止).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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