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 기린 고인돌… 순교자 믿음으로 핀 ‘신앙의 꽃’

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7-26 03:00 수정 2021-07-2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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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완공된 천주교 솔뫼성지 옆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 가보니
고인돌 형상 입구의 ‘10t 돌’ 눈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반석’ 축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맞아 내달 14∼22일 다양한 기념행사
“이곳서 위로받고 다시 일어서길”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옆에 조성된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 입구의 고인돌(위쪽 사진). 이 공간의 지붕은 12개의 들장미 꽃잎을 형상화했다. 솔뫼성지 제공

20일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옆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이 완공됐다. 이곳은 지상 1층의 건물면적이 4752.5m² 규모로 주변에 광장과 산책로, 야외전시장 등이 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다. 천주교대전교구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4∼22일 ‘기억과 희망’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24일 찾은 이곳에서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고인돌 형상의 입구다. 특히 윗부분을 이루는 돌은 가로 10m, 세로 1.5m 크기에 무게가 10t에 이른다. 이 돌에 얽힌 사연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찾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황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던 대전교구는 고민에 빠졌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교황의 성향을 감안하면서도 방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마땅한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반석(盤石)과 3만 개의 묵주였다. 반석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축성(祝聖·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해 성스럽게 하는 행위)을 받은 묵주로 사제와 신자들이 교황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다는 의미였다. 초대 교황의 이름 베드로는 ‘돌, 바위’라는 뜻의 라틴어 페트라와 관련이 있다. 역대 교황들은 교회의 반석이자 베드로의 후계자로 불린다.

문제는 돌이었다. 충남 서산의 한 채석장에 거대한 돌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 돌을 보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운반비를 뺀 돌 가격만 1억 원이었다. 채석장 대표와 성지 전담 이용호 신부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2주 뒤 이런 대화가 오갔다. “큰 돌과 나무는 따로 임자가 정해져 있다는데….” “신부님, 좋은 꿈 꾸셨죠. 5000만 원에 드리죠.” 하지만 이조차도 빠듯한 교구 예산으로는 넘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다시 2주 뒤 연락이 왔다. “돌 주인은 신부님이 아니라 교황님이에요. 돌은 3000만 원에 드리고, 운반비도 여기서 부담할게요.”

그 돌에 무언가를 새기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작업하는 이들은 “교황님이 축성한 돌을 누가 만지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돌을 세로로 높이 세울 것도 고려했지만 우리 문화에 익숙한 고인돌 스타일이 낙점됐다. 인근 덕산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한티고개에 묻혀 있던 바위 50여 개도 야외 공간에 조성돼 있다. 이 신부는 “한티고개는 천주교 박해시대 순교자들이 지나간 길”이라며 “반석과 돌들은 순교자의 굳건한 믿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복합예술관 지붕은 12개의 크고 작은 들장미 꽃잎이 겹쳐 있는 모습이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사목 표어인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박해로 인한 피와 땀이 오히려 신앙의 꽃을 피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건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부는 미사를 올리는 성전과 원로 조각가 이춘만의 이름을 딴 미술관, 상설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복합예술관 곳곳에 이 작가의 브론즈를 소재로 한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성전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허명자 작가가 작업했다.

이 신부는 “좋은 건축물에는 사람이 모인다”며 “이곳을 찾은 이들이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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