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호국 영웅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동아일보

입력 2021-07-26 03:00 수정 2021-07-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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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탄 육군 중사·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2팀 발굴팀장

육중한 통문이 비무장지대(DMZ)의 새벽을 알리듯 굉음과 함께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경계차량을 선두로 우리는 차량에 올라 하나, 둘 차례로 통문을 통과한다. 지금 나와 내 동료들이 오르고 있는 이 전술도로는 어쩌면 69년 전 선배 영웅님들의 한과 아픔이 절절히 서려 있는 곳이기에 다시 한번 나는 임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오늘은 단 한 분만이라도 선배 영웅님들을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의 품에 모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나는 사업차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신 부모님의 3남으로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또래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알프레도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축구신동으로 불리며 네살부터 아순시온 유소년 FC에 입단해 자연스럽게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의 귀국과 함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축구를 잊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태어난 파라과이 국적과 고국인 대한민국의 국적 중에서 부모님의 권유와 내 선택으로 자랑스러운 조국을 선택해 2012년 5월 1일 명예롭게 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 최전방부대에서 임무 수행 중 가장 명예로운 호국의 영웅들을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자원했다. 지금은 백마고지에서 과거를 현재로 되돌리는 가장 뜻깊고 의미 있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투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인 6·25전쟁을 상징하는 주요 전투 중 하나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아 열흘 동안 혈전을 수행하고 적을 물리친 역사적인 전적지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아직도 호국의 영이 살아 숨쉬면서 묵묵히 그리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데려가주길 기다리고 계신 듯하다.

7월의 백마고지는 한낮의 무더위를 가려줄 마땅한 그늘도, 시원한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다. 12kg짜리 방탄조끼를 입은 온몸은 금세 땀과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는데 지뢰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 또한 현실로 존재한다. 우리를 지켜보는 북쪽의 날카로운 눈초리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면 파라과이에서 작은 축구신동 알프레도였던 내게 되물어본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2만 km를 지나 지금 여기 백마고지에 서있는 이유를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없기에 내가 호국의 영웅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모셔드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되뇌며 굵은 땀방울을 지우고 전투화 끈을 다시 한 번 힘껏 조이면서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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