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멍 때리기

이기욱 기자

입력 2021-07-20 03:00 수정 2021-07-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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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에 ‘멍 때리기’ 좋은 국립중앙박물관 포인트 7곳

분청사기·백자실 내의 달항아리. 배경 영상 속 달과 항아리가 겹쳐 보인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의 ‘사기장의 공방’. 창가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사발 160여 점이 진열된 나무선반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모양새의 투박한 사발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오른쪽 벽 모니터에서는 사기장이 도자기를 만드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흙 반죽 전 바가지에 물을 담아 뿌리는 소리와 가마 속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불타는 가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의 초점이 풀린다.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 따로 없다.

폭염을 피해 휴가를 떠나고 싶지만 팬데믹 탓에 불안하다. 박물관은 방역지침에 따라 회당 관람 인원이 제한돼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휴식이 가능하다. 이른바 ‘혼박’(혼자 박물관 구경하기)을 만끽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내 주요 공간을 알아봤다.

다실(茶室) 다이안(待庵)과 자갈정원이 재현된 일본실. 덴류지(天龍寺) 정원 영상으로 일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분청사기·백자실은 ‘달멍’(달을 보며 멍하니 있기) 명당으로 꼽힌다. ‘백자 달항아리’(보물 제1437호)가 있기 때문이다. 9.9m² 크기의 유리 진열장 한가운데 보름달 같은 달항아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오래 들여다보면 곡선이 주는 안정감과 백색이 주는 순수함에 빨려든다. 달항아리 뒤로는 두 죽마고우가 항아리를 감상하는 전통 수묵화가 겹친다. 이제 잠시 멍해질 시간. 달이 항아리인지, 항아리가 달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중국실에서는 남송 화가 마원(馬遠)의 그림을 비롯해 명청대 산수화 6점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전시공간과 구분돼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은은한 황색 조명과 나무 바닥, 녹색 벽이 어우러져 편안함을 선사한다. 바로 옆 일본실에는 일본 국보로 선정된 다실(茶室) 다이안(待庵)이 자갈정원과 함께 재현돼 있다. 다이안은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를 위해 만든 다실로 솥과 다도용품 외에 어떠한 실내 장식도 없는 검박함을 보여준다. 정원 뒤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덴류지(天龍寺) 정원의 동영상이 재생된다. 다실 모형 앞에 앉아 일본 정원의 사계절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일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관람객이 불교조각실의 철불과 석불 6점에 둘러싸여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불상들에 둘러싸여 묘한 신비로움도 경험할 수 있다. 불교조각실에 들어서면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을 포함한 철불(鐵佛) 2점과 ‘감산사 미륵보살상’(국보 제81호) 등 석불(石佛) 4점이 소파 하나를 빙 두르고 있다. 관람객 이모 씨(30)는 “불자는 아니지만 사방에서 불상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세상과 분리돼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실의 창가 휴식자리. 박물관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물 감상 중간에 잠시 쉬어가고 싶다면 같은 층 이집트실의 창가 휴식공간을 이용해보자. 파란 하늘과 우거진 숲, 거울못 연못 등 박물관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안쪽 전시관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인물로 이 박물관에 소장된 유일한 사람 미라인 토티르데스 시신과 목관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야외공간도 힐링 포인트다. 박물관 경내 곳곳에 마련된 오솔길에서는 배롱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들의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다. 하늘이 어둑해진 후에는 박물관에서 용산가족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통해 석조물정원을 들러보자. 어둠 속에서 야간조명을 받은 석탑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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