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2차 양자혁명’ 중… 韓, 통신분야 ‘도전장’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7-19 03:00 수정 2021-07-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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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컴퓨터, 영국은 센서 앞서
한국, 중국과 함께 암호통신 선도
제조업 탄탄하고 재료공학 뛰어나
전략적인 접근-투자 적극 나서야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광학집게 방식으로 256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하버드대 제공

슈퍼컴퓨터로 100만 년이 걸리는 계산을 1초 만에 해치우는 컴퓨터, 방공망을 피해 날아다니는 스텔스기를 찾아내는 레이더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없이도 길을 찾아주는 나침반, 해킹 위협 없는 암호통신도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양자기술이 컴퓨터, 통신,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기술뿐 아니라 신약, 배터리, 금융 등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2차 양자혁명’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 양자컴퓨터 앞선 美… 中, 양자암호통신 선도
1차 양자혁명이 20세기 초 뉴턴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던 작은 원자 세계의 질서를 밝혀낸 학문적 혁명이었다면 2차 양자혁명은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이라는 양자의 물리학적 속성이 컴퓨터, 통신, 센서 등 실제 기술에 적용된 산업혁명이다. 양자중첩은 0과 1의 두 신호가 섞여 있는 상태로 이를 구현한 큐비트(양자컴퓨터의 연산단위)로 컴퓨터를 만들면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 막강한 연산 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된다. 양자얽힘은 원자나 이온 등 양자 두 개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서로 연결된 것처럼 행동해 하나의 상태가 바뀌면 나머지 하나도 바뀌고 이를 통신에 적용하면 해킹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 중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은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을 필두로 2차 양자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에서는 미국이 가장 앞섰다. 2019년 구글은 큐비트 50개로 양자컴퓨터 칩인 ‘시커모어’를 만들어 슈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점으로 불리는 ‘양자우월성’에 세계 최초로 도달했다.

IBM은 현재 65큐비트 양자컴퓨터 ‘허밍버드’를 운용 중이며 올해 127큐비트 양자컴퓨터 ‘이글’도 선보이겠다고 공표했다. IBM은 내년에는 큐비트를 433개로 늘린 ‘오스프리’를, 후년에는 큐비트 1000개의 벽을 넘어 1121개로 만든 ‘콘도르’ 개발을 예고하며 매년 큐비트 수를 두 배 가까이 늘린 양자컴퓨터 출시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광학집게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256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56큐비트로 만들 수 있는 양자 상태는 태양계 전체 원자 수보다 많다”고 밝히며 상상을 초월하는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시사했다.

중국은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潘建偉) 중국과학기술대 교수를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에서 가장 앞서 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2000km 거리에 유선 양자통신망을 구축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유선 2000km, 무선 2600km를 연결한 4600km 양자암호통신에도 성공했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중국은 현재 1만 km 거리를 양자암호통신으로 연결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며 “이 정도면 관련 장비와 부품 등으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이미 수많은 기술 스타트업이 생겨나는 등 양자센서에서는 최고로 평가받는다. 지하의 마그마 밀도 변화를 측정해 화산 분화나 지진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천연가스 탐사에 활용하거나 싱크홀을 찾는 양자센서는 상용화 단계다. EU는 양자 중소기업과 벤처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4월 ‘유럽양자기업컨소시엄(QuIC)’을 출범시켰다.

○ 한국, 양자암호통신 양자물질 전략적 개발
한국은 2차 양자혁명에서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5큐비트, 2025년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미국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14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개최한 ‘한국 양자과학기술 현황과 미래’ 포럼에서 송기홍 한국IBM 사장은 “하드웨어 자체보다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산업 난제를 해결하는 등 소프트웨어, 솔루션 분야에 뛰어드는 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암호통신 상용화 분야에서는 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단장은 “한국은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양자암호통신 상용화에서는 중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앞선 편”이라며 “제조업 강국의 장점을 살려 양자암호통신에 필요한 양자키분배(QKD) 칩 개발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단장은 지난해 KT와 공동으로 현대중공업 내 특수선사업부와 경영 본관, 해양공장 간 주요 보안통신 인프라를 양자암호통신으로 구축했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양자과학기술포럼 의장)는 정부의 전략적 접근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2018년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을 세우고 5년간 양자기술에 12억 달러(약 1조3800억 원)를 투입해 양자컴퓨터를 전략적으로 키웠고 영국도 2014년 ‘국가양자기술프로그램(UKNQT) 허브’를 시작하며 센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글로벌 제조업 강국으로 재료공학 분야가 뛰어난 만큼 양자물질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양자기술이 산업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10, 20년 뒤를 대비해 지금부터 양자 전문 인재를 키우는 데 치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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