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7년째 0명…국책은행 극심한 인사적체, 이유는?

동아일보

입력 2021-07-15 18:05 수정 2021-07-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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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겨우 일하고 할 일이 없어 주변에서 산책하는 임피(임금피크) 직원이 태반입니다.” “퇴직금 받아 일찍 나가고 싶지만 은행처럼 두둑한 명퇴금을 받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버텨야죠.” 국책은행에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시니어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2015년 이후 7년째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의 희망퇴직자가 ‘0명’인 탓이다. 임피 대상 직원만 5년 새 5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최근 6개월 동안 5대 시중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2600명 넘는 직원이 짐을 싼 것과 대조적이다.

국책은행의 인력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희망퇴직(명예퇴직)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최근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불가 의견’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인력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국책은행의 디지털 전환과 청년 신규 채용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명퇴금 인상, 국민 눈높이 맞지 않아”


15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기재부는 국책은행의 희망퇴직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국민 여론과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책은행의 직업 안정성과 상대적인 고임금 수준을 감안할 때 명퇴금 인상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과 달리 기재부가 제도 개선의 핵심으로 꼽히는 퇴직금 인상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국책은행은 다른 금융 공기업들과 형평성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희망퇴직금을 시중은행의 3~4분의 1 수준으로 묶어 놓으면서 희망퇴직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됐다.

기재부는 그러면서 “임금피크 인원을 중소기업에 파견해 경영 자문, 기술 지원에 활용하는 등 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임금피크제 운영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제시했다. 희망퇴직을 활성화해 ‘퇴로’를 여는 대신 ‘뒷방 늙은이’ 신세에 머무는 임피 직원들의 인력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국무조정실은 조만간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제도 개선을 위한 실무회의를 열 방침이지만 기재부가 이 같은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전향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희망퇴직 7년째 0명, 임피 직원 5년 새 5배


제도 개선이 답보 상태에 머물면서 국책은행의 인사 적체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17년 249명이었던 3대 국책은행의 임피 인원은 올해 말 1386명으로 늘어난다. 특히 기업은행의 임피 인원은 연말 올 1003명으로 2017년(58명)의 17배에 이른다. 시중은행들이 디지털 전환과 조직 슬림화를 위해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인적 구성 재편의 기회로 삼는 것과 대비된다.

국책은행들은 고임금 인력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신규 채용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희망퇴직 제도를 활성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임피제 직원은 적당한 직무도 없어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크다. 이들이 정원으로 잡혀 있어 신규 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기관 간의 형평성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명예퇴직에 비용을 조금 더 쓰더라도 젊은 인재와 디지털 인력들을 더 채용해 국책은행의 생산성은 높이는 게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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