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흥-사랑이 고픈자여 다 비틀쥬스에게 오라” 150분 판타지 쇼

김기윤 기자

입력 2021-07-15 03:00 수정 2021-07-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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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턴 원작 뮤지컬 ‘비틀쥬스’ 순항
위트-재치 넘치는 대사에 폭소
화려한 무대연출… 음악도 ‘여운’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배우 정성화(가운데)가 연기한 유령 비틀쥬스가 자신의 분신들을 집 안 곳곳에서 소환하며 포효하는 장면. 무대 조명은 배역의 의상, 극의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CJ ENM 제공

웃음, 흥, 사랑이 고픈 자를 위한 150분의 판타지 쇼다. 개막을 두 차례 미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베일이 걷히고 나니 우려는 말끔히 지워졌다. 화려한 무대기술, 소품과 함께 배우들이 순간순간 빚어내는 합은 쇼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6일 개막해 다음 달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비틀쥬스’는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였다. 미국 토니상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빼어난 무대연출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미국 이외 해외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은 컬트영화의 고전이 된 팀 버턴 감독의 원작을 각색했다. 추락 사고로 죽은 한 신혼부부의 집에 낯선 이들이 이사를 온다. 사망 후 유령이 된 부부는 98억 년 동안 이승과 저승을 떠돌던 ‘선배 유령’ 비틀쥬스와 합심해 이들을 쫓아내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는 자칫 단조로울 법한 평면적 서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극중 유령 비틀쥬스의 존재는 압도적이다. ‘지니의 원맨쇼’라고 불리는 디즈니 뮤지컬 ‘알라딘’ 속 램프의 요정 지니 캐릭터와 비견된다. 그의 손짓, 대사, 발놀림으로 극은 매 순간 요동친다. MC처럼 내레이터 역할도 겸한다. 노련미를 요하는 이 배역은 배우 정성화, 유준상이 맡아 익살스럽게 소화한다. 주역 배우, 앙상블의 합도 상당하다.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무대를 뛰노는 이들의 모습에서 피나는 연습량이 느껴진다.

극을 관통하는 코드는 ‘B급 블랙 코미디’. 비틀쥬스는 “난 VIP석과 R석 사이에 낀 시야제한석 같은 존재야” “코로나 검사 그만하고 싶어” 등 현 상황을 빗댄 풍자적 대사를 이어간다. 관객 정서에 맞도록 원작 대본을 세밀히 다듬었다. 영화였다면 컴퓨터그래픽으로 덧칠했을 법한 온갖 괴물들은 다양한 소품으로 유쾌하게 구현했다.

화려한 볼거리로 뒤덮인 작품이라 음악에 대한 언급은 잊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호주 출신 작곡가 겸 작사가 에디 퍼펙트의 음악은 무대연출 못지않게 다채롭다. 팝, 발라드, 라틴, 힙합, 록, 가스펠 등 여러 장르로 표현한 매력적인 넘버들은 감칠맛을 더한다. 특정 넘버를 대표곡으로 부각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 연기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 선율은 막이 내려진 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좀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작품에는 흥과 웃음이 넘쳐나지만 묘한 슬픔과 상실감도 느껴진다. 극중 비틀쥬스가 징징대며 연신 호소하는 외로움은 인간 본연의 고독감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더 객석을 향해 외친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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