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넘어… ‘로봇-AI 투자’ 정의선 vs ‘실증도시 실험’ 도요다

서형석 기자

입력 2021-07-10 03:00 수정 2021-07-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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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과 일본 최대 자동차 회사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 창업자의 3세이면서 양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은 같지만, 비즈니스 방식에서는 각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두 CEO를 들여다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51),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65).

각각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그룹과 도요타자동차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다. 두 업체가 각 나라의 판매량 기준 1위 자동차 업체이고 그 기업 창업자의 손자라는 점 등등 개인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내연기관차를 친환경차가 대신하고 수소가 미래 핵심 에너지로 손꼽힌 올해 상반기(1∼6월) 두 사람의 행보는 닮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이 각자의 특색을 드러낸 점 또한 적지 않았다.

회사의 업력(業歷)과 CEO로서의 경력은 도요다 사장이 정 회장에게 선배이지만 정 회장은 10여 년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 미래 산업 행보를 이어가며 현대차 브랜드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두 사람의 올해 상반기 행보와 발언을 분석하면 한일 자동차 업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 닮은 듯 다른 ‘수소 전략’
현대차그룹과 도요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수소 분야를 이끌어 가는 양대 라이벌이다.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독자 개발했고 이를 활용한 수소연료전지차(FCEV)는 세계 시장을 양분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수소가 미래 자동차 업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데는 두 사람의 생각이 같다.

정 회장은 10년 이상 쌓아온 수소연료전지 사업 경험을 정·재계 전반에 전파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 학계 등이 뭉친 수소경제위원회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경쟁 관계일 수 있는 기업 총수들과도 수소를 매개로 적극 소통하고 있다. 지난달 SK와 포스코, 효성과 수소 사업 전반에서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수소 동맹도 정 회장이 주도했다.

도요다 사장도 일본에선 수소 전도사로 통한다.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愛知)현 기반의 금융, 에너지, 상사, 철강, 화학 등 대기업 9곳과 주부(中部)권 수소이용협의회를 지난해 3월 결성했다. 협의회는 올해 3월 2030년 아이치현 일대 수소 수입과 생산, 유통, 저장, 활용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해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4월에 도요다 사장은 계열사 히노를 비롯해 경쟁업체 이스즈 등 상용차 회사 2곳과 트럭 FCEV 기술개발 및 실증실험에 뜻을 모으고 합작사 설립을 이끌었다. 도요다 사장은 “더 나은 모빌리티 사회를 위해 경쟁뿐 아니라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다 사장 자신도 올해 5월 수소를 동력으로 하는 차량으로 세계 첫 레이싱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수소의 안전성을 내가 직접 증명하고 싶었다”고 대회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수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둘은 차이를 보인다. 도요다 사장이 5월 나섰던 레이싱 차량은 FCEV가 아닌 수소 엔진 차량이었다. 기존 내연기관(엔진)에 가솔린, 디젤 대신 수소를 연료로 쓴 것이다. 주행 중 엔진오일에서 발생하는 것 외에 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건 FCEV와 같지만, FCEV로 현대차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도요다 사장이 수소 엔진을 내세운 건 이례적이었다.

도요다 사장은 “일본 자동차 업계 550만 명의 축적된 기술력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내연기관 기술력과 관련 인력의 고용을 지키면서 친환경차로 가는 일본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정 회장은 수소연료전지에 깊이 집중하고 있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다양한 모빌리티와 산업 영역의 동력원으로 확대해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소연료전지를 다른 완성차 업체는 물론이고 발전, 선박, 철도 등의 분야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대로템의 수소 트램(노면전차), 현대제철의 수소환원제철(탄소배출 없는 철강 공정) 등 이를 실현할 그룹 내 여력도 갖췄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준공을 목표로 중국 광저우에 수소연료전지 공장을 만드는 등 해외 경쟁사를 앞서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도요타자동차 역시 철도회사, 철도차량제작사 등과 지난해부터 수소연료전지, 배터리 전력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철도차량 제작에 나서고, 수소연료전지를 재난재해 현장에서 구급차 등에 활용하는 기술을 적극 시험하며 현대차그룹 못지않은 시장 선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에 집중하는 정 회장, 수소엔진과 병행하는 도요다 사장의 전략이 세계 수소 시장에 미칠 영향이 주목되는 이유다.

○ 빼앗길 수 없는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자동차 판매 규모만 고려하면 도요타자동차가 현대차그룹보다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가 판매 부진에 시달렸던 지난해 도요타자동차는 952만 대, 현대차그룹은 635만 대를 팔았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위상은 아직 도요타 렉서스보다 부족하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미래는 자동차만이 사업의 전부가 아닌 시대가 될 것”이라며 미래 신사업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를 향한 정 회장의 보폭은 코로나19에도 거침없었다. 4월과 6월 연달아 각각 미국 서부, 동부 출장에 나서며 코로나19 이전부터 투자해온 모빌리티 사업 진척 상황을 점검했다. 정 회장 주도로 2019년 현대차그룹이 미국 자율주행기술 업체 앱티브와 20억 달러씩 들여 세운 모셔널에서 로보택시(자율주행 무인 택시) 제작 상황을 점검했다. 지난해 지분 매입 계약을 체결한 로봇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최종 인수도 지난달 마무리했다.

정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 임하는 현대차그룹의 정체성을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올해 신년사에서 정의했다. 자동차 제조뿐 아니라 이동과 관련한 모든 모빌리티 영역에서 현대차 브랜드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현대차그룹의 로봇 사업에서는 보행을 돕는 로봇도 모빌리티일 정도로 그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며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등에 대한 정 회장 개인의 의지가 모빌리티 사업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도요다 사장의 상반기 모빌리티 전략은 ‘대기만성’이다. 당장 굵직한 의사결정을 선보이기보다 모빌리티 경쟁력을 조금씩 쌓아 올리는 데 집중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2월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후지산 자락 옛 공장 부지에 미래 모빌리티 실증도시 우븐시티 건설을 시작했다. 도요다 사장은 이곳에 대해 “대형 실증실험이 가능한 커넥티드(이동통신망에 상시 연결된) 도시”라며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한 실험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수소, 자율주행 등 미래 자동차 기술을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실험하며 완벽한 상용화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미국 자율주행 전문업체 ‘레벨5’를 인수했고, 일본 내 상용차 업체들과 인터넷의 클라우드로 수집한 지리 정보를 차량의 지도로 활용해 자율주행 등에 적용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자동차 업계는 정 회장, 도요다 사장의 행보가 각자의 회사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전체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고 본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 회장은 여러 산업 간의 융합을 통한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성공적으로 현대차그룹에 인식시켰다”며 “도요다 사장이 12년간 다져온 기술 및 품질 중시, 자국산업 육성 등의 경험 또한 도요타자동차의 미래는 물론이고 정 회장에게도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트럭-버스 등 수소 생태계 확충… 도요타는 후쿠시마를 수소 핵심기지로 육성
현대자동차그룹과 도요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차량(FCEV)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두 회사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수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와 도요타가 다양한 차종을 개발하는 건 물론이고 연관 기업들이 손을 잡으면서 사회를 유지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도 수소의 미래를 엿보고 있다.

전기차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듯 두 회사의 경쟁 속에서 수소가 가깝게 느껴지는 시대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2018년 수소전기차 넥쏘를 선보인 현대차그룹은 2023년 주행거리를 800km 이상으로 늘린 넥쏘 후속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주행거리를 650여 km로 늘린 FCEV 세단 미라이 2세대 모델을 내놓은 데 맞서는 전략이다. 승용, 상용은 물론이고 특수차에서도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자동차 수소트럭.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FCEV 트럭을 양산하고 해외(스위스)에 수출하며 글로벌 수소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한국의 수소 생태계 기반 확충에도 힘을 쏟고 있다. FCEV 버스를 서울 시내버스에 투입하며 수소차가 더 이상 미래의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에너지업체들과 연합해 수소충전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수소와 밀접하게 연관된 철강은 물론이고 기반시설을 건설할 시공능력, 수소차 보급을 위한 금융 서비스 등을 한데 보유한 건 현대차그룹의 강점이다.

일본 열도는 도요타자동차의 수소사업 무대가 된 지 오래다. 특히 도요타자동차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동북부 후쿠시마(福島)현을 일본 수소산업의 핵심 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수소트럭.
도요타자동차의 수소 실험은 단순히 수소연료전지 생산과 수소충전 설비를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달 식음료, 유통, 자동차 등 여러 업계 업체들과 연합해 후쿠시마현을 수소 활용 미래 도시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배송에 쓰이는 트럭은 물론이고 대형 재난재해가 벌어질 경우 음식 조리가 가능한 식당차, 의료시설을 갖춘 닥터카 등 구호차량도 수소차를 도입하는 걸 모색한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5월 나선 세계 최초의 수소차 레이싱에는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수소가 쓰였다.

2016년 큰 지진을 겪었던 구마모토(熊本)현, 대형 편의점들도 도요타자동차 수소사업의 핵심 파트너다. 구마모토에서 3월 세계 최초로 선보인 닥터카는 수소연료전지가 발전기 역할도 해 비상시 전원 공급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편의점 3사와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FCEV 트럭을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현대차그룹보다 상용차 부문에서 FCEV 상용화는 늦었지만 실생활에 더 밀접하게 추진하는 모습이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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