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9만원인데 관리비도 29만원?…전·월세 신고제 ‘회피 꼼수’

뉴스1

입력 2021-07-09 06:38 수정 2021-07-0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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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 (자료사진) 2021.7.2/뉴스1 © News1

#. A씨는 서울시 송파구 원룸 매물을 찾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8평짜리 1.5룸이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29만원이었다. 주변의 비슷한 수준 매물과 비교하면 보증금이 10분의1 수준이었다. 급히 계약 문의를 하려고 부동산 전화번호를 누르는 순간, A씨는 또 한 번 뜨악했다. 관리비가 29만원이었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임대차 3법의 마지막 퍼즐인 ‘전·월세 신고제’가 지난 6월 시행된 가운데 임대차 시장에서는 신고를 피하기 위한 편법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집 주인들은 신고 내용이 향후 과세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신고 기준에 맞춰 월세나 관리비를 조정하고 나섰다.

위 사례에 언급된 매물도 마찬가지였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 세입자는 월세 55만원에 관리비 3만원에 계약했다”며 “집주인이 전월세 신고를 피하기 위해 월세를 낮추고 관리비를 올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월세 신고제에 따르면 수도권, 광역시, 도·시 지역에서 전세보증금 6000만원 또는 월세 30만원을 넘는 거래를 체결하는 경우 관할 읍·면·동에 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계도기간이 끝나는 내년 6월부터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신고 내용은 계약 금액과 기간, 주택 정보 등이다. 전·월세 거래는 정확한 시세 정보가 없거나 있더라도 시세 차이가 커 정보 불균형이 심했는데, 신고제를 통해 투명성이 강화돼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리란 것이 정부의 기대다. 하지만 임대인의 불만은 크다. 이 제도가 과세 강화의 밑바탕이라는 의심때문이다.

정부는 신고 자료를 임대소득 과세 근거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임대인들의 예상은 다르다. 광범위한 정보를 신고하는 만큼 향후 과세 근거로 발목을 잡힐 것이란 관측이다.

현재 연 2000만원 이상 임대소득은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고, 그 이하는 분리과세한다. 일부 임대인들은 전·월세 거래가 신고 대상이 아닌 점을 이용해 소득을 일부 줄여서 신고해왔다. 이들은 앞으로 소득이 낱낱이 드러나면 과세 세원으로 포착될 것이란 예상에 신고를 꺼리고 있다.

시장에도 임대인들이 고심한 결과가 반영되는 모습이다. 일부 거래에서는 세입자에게 다운계약서(허위매매계약서)를 요구하는 일도 포착됐다. 하지만 허위 신고가 적발되면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고, 추가 세금 추징 가능성도 있다. 다른 꼼수가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관리비다. 관악구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아파트는 이 방법을 쓰기 어렵지만, 원룸은 월세를 낮추고 관리비를 올리는 방식으로 신고를 피할 수 있다”며 “보통 소형 원룸 관리비는 7만원 밑이긴 한데, 전월세 신고 피하겠다고 많이 올린 곳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날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일부 매물은 관리비가 월세만큼 비쌌다. 신림동의 전용면적 16㎡ 원룸 매물은 월세는 20만원이었지만 관리비가 15만원이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월세 매물 중 관리비가 10만원 이상인 서울 원룸 비율은 10%로, 한 달 전인 6월 8일(8.93%)보다 늘었다.

임대인이 관리비를 크게 올리더라도 세입자로서는 항변할 길이 없다.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관리비는 전·월세 신고제 대상이 아니다. 전기·수도 사용료, 공용시설 유지관리 비용 등 임대 개시 이후에 발생·부과되는 사용료의 성격이라 임대차 신고 항목에서 빠진다.

당장은 꼼수 정도에 그치지만, 향후 임대인들의 부담이 가중되면 임차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과도한 규제로 임대인을 압박하면 공급이 위축될 우려가 크고, 향후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 있어 시장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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