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블’ 꿈꾸는 게임… 스토리 입혀 영화-책으로

이건혁 기자 , 신동진 기자

입력 2021-07-09 03:00 수정 2021-07-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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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 키우는 ‘유니버스 전략’


기업공개(IPO)를 앞둔 게임사 크래프톤은 단편영화 ‘그라운드제로’를 지난달 26일 공개했다. 자사 인기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세계관을 담은 짧은 영상엔 인기 배우 마동석 씨를 비롯해 낯익은 배우가 여럿 출연했다.

9분 18초짜리 영상엔 배틀그라운드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가 담겼다. 스토리를 모아 세계관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크래프톤은 이 같은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콘텐츠 관련 인력을 채용하고, 배틀그라운드 유니버스를 담은 애니메이션과 웹툰 등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유니버스’ 구축이 게임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유니버스는 콘텐츠의 시공간적 배경인 세계관을 뜻한다.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활용해 영화, 만화, 드라마, 게임을 생산하며 두꺼운 팬덤을 형성했던 것처럼 게임사들도 게임 내 캐릭터와 스토리의 연결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견 게임사 컴투스도 자사 대표 게임 ‘서머너즈 워’의 유니버스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나가고 있다. 컴투스는 4월 신작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 서비스 시작과 함께 게임의 유니버스를 활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영문 코믹북 1만4000부를 인쇄해 매진시켰다. 2014년 첫선을 보일 당시 ‘서머너즈 워’의 세계관은 200자 분량에 그쳤지만, 2017년 IP전략실을 만들고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지식재산(IP)을 개발한 스카이바운드와 협업하면서 150년짜리 역사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국내 게임사들은 그동안 IP를 개발하고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넥슨의 ‘카트라이더’ 등은 한국 게임을 대표하는 IP지만 게임의 후속 시리즈로 쓰이거나 다른 업종과 한시적으로 협업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의 인기에 비해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확장 가능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최근 기업 가치 고평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는 스토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콘솔이나 PC용 타이틀 대신 짧은 시간 즐기도록 구성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스마트폰용 모바일 게임 위주인 한국 시장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의 경우 태생적으로 그래픽, 재미 위주로 개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니버스가 빈약한 편”이라고 전했다.

반면 해외 게임사들은 이전부터 유니버스 구축에 적잖은 공을 들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다. 소설로도 출간돼 있는 이 게임의 세계관은 여러 종족들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 게임 ‘레지던트 이블(원제 바이오 하자드)’, 미국 게임 ‘툼 레이더’ 등도 독특한 세계관을 앞세워 게임에서 영화, 드라마, 만화 등으로 확장돼 나갔다.

이에 국내 게임사들은 출시한 게임이 인기를 얻은 뒤에야 유니버스 구축을 고려했던 데에서 벗어나 기획 단계에서부터 유니버스 구축을 동시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콘텐츠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함께 IP 개발 단계서부터 게임, 영화 등에서 쓰일 유니버스 구축을 위한 조인트벤처를 만들었다. 위정현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점수 내기, 반복 전투 등이 주류였던 한국 게임업계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일회성 시도에 그치지 않으려면 스토리텔링의 수준을 보다 깊이 있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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