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삼킨 새우…대우건설 품은 중흥, 기대와 우려

황재성기자

입력 2021-07-06 12:25 수정 2021-07-0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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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대우건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광주 기반 지역업체에서 중견 건설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흥건설이 선정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호반건설에 이은 3번째 주인이다. 호반에 이어 또다시 규모가 크지 않은 중견기업이 새 주인으로 나서게 된 셈이다.

두 기업의 체급과 기업역량 차이 등를 고려할 때 ‘새우가 고래를 삼킨 셈이다’는 평가가 많다. 중흥그룹은 이를 의식한 듯 오늘(6일) 보도자료를 내고, “인수작업을 연내 마무리 짓고, 대우건설을 세계 최고 부동산 플랫폼으로 키우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중흥건설의 자금 동원력을 감안할 때 인수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건설업계에서 그동안 대형 건설사를 인수합병(M&A)을 통해 차지한 업체들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 이번 매각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3번째 주인은 중견 건설사 중흥건설



KDB인베스트먼트는 어제(5일)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자로 중흥건설과 중흥토건 등이 참여한 중흥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매수가격은 2조10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최초 중흥컨소시엄이 제시했던 금액(2조3000억 원)보다 2000억 원가량 낮춰진 것이다.

그럼에도 경쟁자로 나섰던 스카이레이크컨소시엄(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시행사 ‘DS네트웍스’)가 제시한 금액(1조8000억 원)보다 3000억 원이 높은 수준이다.매각작업을 주도한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매각대금과 거래의 신속성과 확실성, 대우건설의 성장과 안정적 경영 등을 종합 판단해 중흥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대우건설은 3번째 주인을 맞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우건설은 1973년 대우실업이 영진토건을 인수한 뒤 설립한 회사로, 1970~90년대 말까지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특히 시공능력에서 건설업계에서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았고, 해외시장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승승장구하던 대우그룹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1999년 해체되자 대우건설은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을 받는 처지에 놓이는 아픔을 겪었고,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에 쓰러지면서 3년 만에 다시 매물로 나왔다.

9년 뒤인 2018년 1월 호반건설이 새 주인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호반은 실사과정에서 대규모 해외공사 현장 부실이 드러나자 대상자로 선정된 지 8일 만에 인수포기를 선언했다.


● 세계적인 부동산 플랫폼 기업으로 육성


중흥그룹은 6일 보도자료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양적·질적인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 능력을 보유한 중흥의 강점과 우수한 주택 브랜드, 탁월한 건축· 토목·플랜트 시공 능력 및 인적자원을 갖춘 대우건설의 강점이 결합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 전문 그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흥그룹은 또 ‘푸르지오’를 국내 1등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국내외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을 통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에 나서겠다는 뜻도 공개했다.

이를 위해 해외 유력 엔지니어링 회사를 인수해 해외 토목·플랜트 사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확대를 추진하고, 신재생 에너지 분야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을 확보해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플랫폼 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 목수에서 대기업 총수로



대우건설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중흥건설은 그동안 광주와 전남, 세종특별자치시, 경기 평택 등지에서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온 주택건설 전문업체이다.

설립자 정창선 회장은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나 19살에 목수로 건설업을 시작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0대 때 ‘한 우물만 판다’는 철학을 세우고, 업무용이 아닌 땅은 사지 않고, 보증은 서지 않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3불 원칙’을 지켜왔다고 한다.

또 자금관리에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금관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서 무너진 기업을 많이 봤다”며 “우리는 사업을 계획하고 자금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금계획에 따라 사업계획을 세운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런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1983년 중흥건설의 전신인 금남주택을 설립했고, 1989년 금남주택에서 증흥건설로 상호를 바꾸며 본격적으로 주택건설에 나섰다. 1990년대 광주와 전남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중흥건설은 2000년대 접어들어 ‘중흥 S-클래스’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앞세워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특히 세종시 공공택지사업을 통해 중흥건설을 중견 건설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흥건설그룹은 3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전체 매출액은 3조1516억 원, 자산총액은 9조2068억 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가 대부분 건설 관련 기업들이지만, 헤럴드 남도일보 등과 같은 언론사도 보유하고 있다.


● 지역 주택업체에서 글로벌 건설사로



중흥건설 사옥. 사진 뉴시스
중흥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단숨에 국내 톱3(시공능력평가 기준) 건설사로 올라선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6위이고, 중흥그룹 계열사인 중흥토건과 중흥건설은 각각 15위와 35위에 랭크돼 있다. 3곳을 합치면 순위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이어 3번째 순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재계 순위도 수직 상승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5월 발표한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중흥그룹은 자산액 9조2070억 원으로 47위에 있다. 대우건설은 9조8470억 원으로 42위이다. 둘을 합치면 19조540억 원으로 순위가 미래에셋(19조3330억 원)에 이은 21위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무엇보다 광주를 기반으로 하던 주택건설 전문업체에서 해외건설 현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다. 대우건설은 현재 수주잔액 39조 원 가운데 해외가 8조 원에 달한다. 현장도 동남아시아부터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골고루 펼쳐져 있다.


● 승자의 저주 등 우려도 적잖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2조 원이 넘는 자금을 한꺼번에 매입하는 데 사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경영 리스크 우려가 적잖기 때문이다. 흔히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경영 리스크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와 매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품은 뒤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당시 인수대금 6조6000억 원 가운데 4조 원 이상이 재무적 투자, 이른바 ‘잠재적 채무’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경영 위기가 더 커졌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산업은행에 재매각해야만 했다.

이에 대해 증흥건설은 대우건설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한 일시적으로 단기 브릿지론 성격의 자금을 일부 차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흥그룹 관계자는 “내년까지 유입될 그룹의 영업 현금흐름으로 단기 브릿지론은 대부분 상환할 예정”이라며 “사실상 외부 차입 없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업계에서 대형 건설사를 인수한 업체들의 성공한 선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흥건설과 대우건설은 체급 차이가 크게 난다”며 “지역기반 건설업체가 글로벌 브랜드인 대우건설을 품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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