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강요 안돼! 대책 세우고 자율에 맡겨야[기고/박수현]

박수현 차의과대학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조교수

입력 2021-07-07 03:00 수정 2021-07-0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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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현장 목소리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전문적인 영역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수한 영역인 수술실 폐쇄회로(CC)TV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표명하는 우려를 우리 사회는 가볍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해결책이나 보완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괜찮다고 덮어버린다. 의료와 관련된 법안이나 정책은 시행에 앞서 가장 신중해야 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시행착오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수술실 CCTV와 관련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의 하나가 정보 유출의 문제다. 혹자들은 시범적으로 시행한 병원들을 예로 들면서 아직까지 해킹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러한 걱정을 자신 있게 덮으려고 든다. 하지만 환자의 노출뿐 아니라 환자의 수술명이나 진단명을 유추할 수 있는 수술 장면은 가장 민감한 의료정보 중 하나다. 이러한 정보를 주차장이나 로비, 장례식장과 같은 방범 CCTV와 동급으로 보는 시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의 정보가 지금까지 유출되지 않았다고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되돌아 반성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에 나와서 수술실 CCTV가 수술의 예후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단편적인 주장을 펼치는 의사의 이야기만을 듣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수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살기 위해 받아야 하는 수술이며,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나은 질의 삶을 살기 위해 받는 선택이 가능한 수술이다.

수술실 CCTV가 수술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CCTV를 설치한 병원에서 수술 중 사망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의사라면 누구보다 그런 병원에서 응급수술이나 위험도가 아주 높은 수술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다.

공장식 수술, 대리수술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는 부도덕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는 사실 두 종류의 수술 중 후자에서 발생한다. 응급수술은 환자를 유치할 수도 없고 이윤이 남는 수술도 아니다. 긴박한 응급수술이나 위험한 수술은 애초부터 숙련된 의사의 노련한 기술과 오랜 경험을 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대리수술이 불가능하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긴장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추가로 긴장을 올려줄 수 있는 수술실 CCTV와 같은 제도가 집도하는 의사에게, 그리고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리가 없다.

응급수술에서 집도의는 최선을 다했지만 가족을 잃은 환자의 슬픔은 불필요한 소송을 가져올 수도 있다. CCTV를 본다면 너무도 흔한 응급수술의 환경임에도 과도한 긴장감 속에서 수술 과정에서 큰소리가 오가고 많은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집도의가 피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수혈이 늦어진 것 같다”는 등의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다.

무죄로 판결되더라도 4, 5년간 정신적·육체적으로 시달리던 소송 끝에 응급수술을 하던 의사들이 떠나고 수련의들도 더는 지원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CCTV를 강제화할 경우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위험한 수술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 가장 피해를 볼 것이다. CCTV 강제화는 나아가 응급수술의 부재, 기피 진료과에 대한 기피 가중으로 이어져 결국 응급수술 인력의 고갈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강제하고 강압적으로 처벌하기보다 소비자의 선택과 함께 자율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문제 발생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법을 제정하고 관철하기보다는 대책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CCTV를 설치할 수 있도록 설치비 지원, 보안 관리에 대한 가이드 등 관련 세부법안 마련, 설치 병원에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 듯싶다.

결국 대책이 있고 지원이 있다면 자율적으로 설치하는 병원들이 늘어날 것이다. 또 환자들이 CCTV를 설치한 병원을 선택하면 수술실 CCTV는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에 따라 흘러갈 것이다.

강요, 감시, 일괄 규제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의 순기능을 따르는 민주주의적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나서 다시 새로운 법안을 내는 등 누더기 정책을 반복하기보다는 응급수술이나 생명과 직결된 수술을 하는 의료인들을 보호하고 수련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수현 차의과대학 분당차병원 소아응급센터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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