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둬도 되는데… ” 지나친 검진이 갑상선암 환자 늘린다

태현지 기자

입력 2021-07-07 03:00 수정 2021-07-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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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작업자 유병률 높은 이유, 일반인보다 검진 많이 받기 때문
초음파 기술 발달 과잉진단 불러
치명율 낮은 데도 수술치료 급증… 암종에 따라 대응 방식 달리해야



지난해 말 발표된 2018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암 유병자 수 200만 명인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 25명당 1명이 암 유병자라는 것이다. 특히 암종별 남녀 전체에서 가장 많은 유병자 수를 기록한 암은 갑상선암(갑상샘암)으로 43만2932명, 전체의 21.6%에 이른다. 암을 경험한 10명 중 2명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갑상선암 발생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갑상선암 발생률이 과잉 검진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서성원·진영우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 등 방사선 작업 종사자 집단의 갑상선암 검진율을 일반 집단보다 약 1.6배 높고 갑상선암 발생률은 약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특성상 갑상선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방사선 작업 종사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검진을 받으면서 발생률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다. 발생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유전적 요인이나 방사선 노출에 무게가 실렸던 갑상선암에 대한 일반적 시각을 뒤집는 결과다.

연구팀은 “2015년 ‘무증상 성인에 대해 갑상선암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검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에도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검진율이 일반인보다 1.4배 높게 나타났다”며 “이 같은 결과는 방사선 작업 종사자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직장 검진 등 과잉 검진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갑상선 결절은 인구의 절반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하다. 이 결절의 5∼10% 정도만이 갑상선암으로 진단되지만 암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95%의 긍정적인 부분보다 5%가량의 부정적 확률을 찾아내고 없애는 데 집중한다. 예후가 좋고 진행이 느려 ‘착한암’ ‘거북이암’이라고 불리는 갑상선암의 발생과 수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다.


○ 검진 프로그램 보편화가 과잉 검진 유발


갑상선암 과잉 검진은 방사선 작업 종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음파 검진 기술의 발달로 갑상선암 발생자 수는 1999년 3407명에서 2018년 2만8651명으로 약 8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만 해도 목에 압박이 느껴지는 증상 또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갑상선 혹만 검사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만져지지 않는 작은 크기의 갑상선암까지 초음파 정밀 검진으로 조기 진단이 가능해졌다.

이 같은 검진 기술의 발달로 갑상선암의 진단과 수술이 폭증하면서 의료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진행이 느리고 비교적 온순한 갑상선암을 빠르게 수술하고 광범위하게 절제해 부작용 문제가 상당하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2014년 ‘갑상선암 과다 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 연대’를 출범해 무분별한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반대하고 정부와 의료계의 정책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의사들은 4만 명에 달하던 2011년 국내 갑상선암 환자 수가 전 세계 평균의 10배 이상인 점과 지난 30년간 발생률이 30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을 들어 과잉 진단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후 국립암센터는 갑상선암에 대한 검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갑상선암 검진의 보편화도 의료 서비스 이용자의 과잉 검진을 늘리는 원인으로 이야기된다. 갑상선암은 조기 검진이 필요한 국가 암 검진사업 항목이 아니다. 하지만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포함된 경우가 많고 다수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결국 고도로 발달된 초음파 장비에 접근성이 더해지며 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손쉽게 갑상선 결절을 발견하고 조기 수술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갑상선암 97% 이상은 ‘착한 암’


갑상선은 목 앞 중앙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기관으로 갑상선 호르몬과 칼시토닌을 생성하고 분비한다. 갑상선 호르몬은 체온을 유지하고 신체대사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주며 태아나 신생아의 뇌, 신체 성장 발육에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또 칼시토닌은 뼈, 신장 등에 작용해 혈중 칼슘 수치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게 분비되거나 과다하게 분비되는 것을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항진증이라고 하며 갑상선에 혹이 생긴 것을 갑상선 결절이라 한다. 갑상선 결절 중 5∼10%가 악성 결절인 갑상선암으로 진단되며 갑상선암은 세포의 종류나 성숙 정도에 따라 유두암과 여포암, 저분화암 및 미분화암(역형성암), 수질암, 림프종 등으로 구분된다.

국내 갑상선암의 97% 이상은 유두암으로 흔히 요오드 섭취량이 많은 나라에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상선 유두암의 경우 진행이 느리고 예후도 좋기 때문에 1cm보다 작은 갑상선 미세유두암의 경우 발견 즉시 수술하지 않고 적극적 관찰(혹은 능동 감시)을 선택하기도 한다. 수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부작용과 사후관리에 대한 부담이 있어 암의 크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갑상선암의 진행, 전이 등 변화를 관찰하고 진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 조기 검진 이점 많지 않고 수술 부작용도 고려


문제는 높은 수준의 조기 진단이 갑상선암의 사망률과 생존율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증상이 없는 성인이 선제적 관리를 위해 초음파 검진을 받고 치료를 받더라도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갑상선암에 의한 사망률은 30여 년간 변화가 없었으며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망률의 정체가 과잉 진단의 존재를 시사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갑상선암의 경우는 암 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인 5년 상대생존율이 100%로 일반인의 생존율과 동일하다.

지난해 전재관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예방의학 전문의)와 정규원 대외협력실장 연구팀은 갑상선암 초음파 검진이 갑상선암으로 인한 사망 감소에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초음파검사를 이용한 갑상선암 수검 여부가 갑상선암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 교수는 “갑상선에 기저질환 등 문제가 없는 건강한 성인의 경우 갑상선암 검진을 목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검진을 통해 갑상선 결절이나 암을 발견했다면 암의 진행 상황에 따라 적극적 관찰 치료(능동 감시)나 수술을 택해야 한다.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으나 수술에 따른 부작용도 있어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


○ 조기진단 필요한 암과 구분해 맞춤형 검진해야


암은 병명만으로도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모든 암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조기에 대응하고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암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종양으로 분류되는 암도 있다는 사실은 암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안감을 키우기보다는 암종별 대응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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