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분의 1 지도’에 연필로 쫙…그린벨트 탄생은 이랬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7-05 12:10 수정 2021-07-0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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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허파’로 불리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가 도입된 지 올해로 만 50년이 됐다.

1971년 7월30일 첫 도입된 그린벨트는 한동안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불리며 허물어진 집수리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주민 재산권 보호와 부족한 도심택지 확보 등을 이유로 해제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최초 도입 때보다 면적이 70%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그린벨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여당을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부족한 택지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면 지구적 환경변화에 따라 녹지 공원 등 생태공간의 가치가 높아지는 점을 고려해 그린벨트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정기발행물인 ‘월간국토 7월’에서 ‘개발제한구역 반세기’라는 특집기획을 통해 그린벨트에 얽힌 각종 정책 비사와 현황, 공과, 향후 활용 방안 등을 집중 정리했다.

● 그린벨트 면적 70% 수준으로 축소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그린벨트는 수도권과 6개 광역도시권 등 모두 7곳에 3829㎢로 집계됐다. 최초 지정됐을 당시 면적(5397㎢)과 비교할 때 7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일단 춘천권(지정 당시 면적·294㎢) 청주권(180㎢) 전주권(225㎢) 진주권(203㎢) 통영권(30㎢) 여수권(87㎢) 제주권(82㎢) 등 중소도시지역 그린벨트는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에 지정 면적이 한꺼번에 풀려났다.

여기에 수도권이 지정 당시 1567㎢에서 택지 등의 용도로 166㎢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되면서 현재 1401㎢로 줄었고, 부산권(597㎢→412㎢) 대구권(536㎢→515㎢) 광주권(554㎢→512㎢) 대전권(441㎢→424㎢) 울산권(283㎢→269㎢) 창원권(314㎢→296㎢) 등 대도시권 그린벨트들도 모두 면적이 줄어들었다.

대도시권의 경우 대부분 ‘선 계획-후 해제’ 원칙에 따라 환경평가 등을 거친 뒤 도시계획을 수립한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그린벨트에서 해제됐다.

● 군사작전처럼 그린벨트 지정
특집기획에 따르면 그린벨트 지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최상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그린벨트 지정작업이 3개월 동안 극비로 진행됐다”고 소개했다. 당시에는 GPS나 정확한 지도가 없었고, 항공사진도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군이 가지고 있었는데, 군사기밀로 분류돼 제공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1만분의 1로 축적된 지도를 사용하면서 연필선 굵기에 따라 5m 정도의 오차가 발생했고, 연필선이 어디를 지나느냐에 따라 그린벨트가 결정됐다. 그 결과 하나의 집인데도 둘로 나뉘어서 마당과 아래채는 그린벨트이고, 위채는 그린벨트가 아닌 집이 1만 채 이상 나오기도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런 작업을 통해 1971년 7월 서울 인천 성남 등 수도권을 시작으로 1977년말까지 8차례에 걸쳐 1개 특별시, 6개 광역시, 35개 시, 21개 군, 49개 구에 5397㎢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이는 당시 국토면적의 5.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 도시 확산 방지에다 농지 확보, 안보 목적으로 도입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재밌는 점은 당시 그린벨트 도입 목적이 ‘대도시의 무분별한 확산’뿐만 아니라 ‘농지 확보’와 ‘안보적인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최상철 명예교수는 “1960~1970년대 쌀 부족 문제는 국가적인 이슈였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식 장려 등 쌀 소비억제 정책과 함께 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농지를 보전하는 정책 수단으로 그린벨트가 도입됐다”고 소개했다.

당시 서울 주변에 김포평야, 마들평야(현재 노원구, 도봉구 일대) 등 대규모 농지가 있었고,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한 강남의 수서, 개포동, 대치동(당시 경기도 광주) 일대도 우량농지였다. 서울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 우량농지에까지 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가 도입됐다는 것이다.

한편 도시 확산과 농지보호 목적과는 별개로 휴전선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의정부나 서울의 은평과 마곡지구 일대에도 안보상의 이유로 그린벨트가 지정됐다.

● 그린벨트에 ‘OO가든’이 많은 이유
그린벨트는 도입 이후 줄곧 매우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우리나라에 그린벨트를 소개한 일본이 제도 도입 후 얼마 뒤 그린벨트 정책을 포기한 상황과 비교되면서 이런 평가에 힘이 실렸다.

여기에는 제도를 설계한 박정희 대통령의 애착도 한몫했다. 박 대통령은 초소를 설치해 그린벨트 내 불법행위를 감시했고, 적발된 사람들은 모두 법적으로 처벌했다. 그 결과 그린벨트를 훼손하거나 불법 점했다는 이유로 교도소를 간 사람이 속출했다.

별채가 다 허물어져도 새로 집을 못 짓게 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씩 집을 넓힌 사람도 항공사진을 찍어 1년 전후를 비교한 뒤 다르게 나타나면 처벌하기도 했다.

다만 자식 분가 등을 위해 새로 집을 지어줘야 할 때 그린벨트를 해제해주지 않고 대신 새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것이 이축권(移築權)이다.

어떤 개발행위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축권은 비싼 값에 팔렸는데, 대규모 음식점들이 이를 사들여 ‘OO가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짓기 시작했다. 현재 그린벨트에 ‘OO가든’이라는 상호의 음식점이 많은 이유다.

● 그린벨트, 국유화 등 지속적인 보전 방안 필요
그린벨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적정한 개발과 보전이 여전히 엇갈린다.

개발론은 폭등하는 집값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여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20여 차례에 걸친 대책에도 멈추지 않는 집값 급등세를 잡기 위해선 보전 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를 활용해 택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산업단지 개발 등 정부가 앞장선 그린벨트 개발 분위기를 타고 불법, 편법, 투기과 같은 행위가 그린벨트를 대상으로 빈발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보전만을 강요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대도시의 허파 기능을 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상철 명예교수는 “그린벨트 영구보전을 위해 국가가 직접 땅을 사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은 못사더라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매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국가가 직접 토지를 소유한 상태에서 떳떳하게 도시정책이나 주택정책에 따라 조금씩 그린벨트를 해제해 가면서 주택을 공급하거나 공공의 목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 상황에 맞게 그린벨트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병선 가천대학교 명예교수도 특집기획에 실은 기고를 통해 “보전도 개발도 아닌 부조리와 갈등의 현장을 그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며 “그린벨트의 존재 목적 자체를 공익과 사익, 개발이익의 귀속, 재산권의 범위, 환경보전 등 핵심가치의 관점에서 심층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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