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신세계 유니버스’엔 우럭이 있을까 [최영해의 THE 이노베이터]

최영해 기자

입력 2021-07-04 09:00:00 수정 2021-07-0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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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의 MED(메시지, 이베이, 그리고 DNA)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온-오프라인 양 날개 달아
불황기 고급 호텔 투자 역발상도
SNS달인, 정치적 논란에도 꿋꿋한 리더십 선봬


지난 달 30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열린 신세계그룹의 하반기 전략회의.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결정한 직후 열린 회의여서 그런지 회의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40여명의 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용진 부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신세계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나침반이자 지도입니다. 온라인 시장에서 기회를 먼저 잡아야 우리가 꿈꾸는 ‘신세계 유니버스’(신세계 세상)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M&A(인수합병)로 우리는 270만 명의 고객을 단숨에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이마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에서 거둬들이게 될 것입니다.”

정 부회장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오프라인 상의 백화점과 이마트가 ‘굴뚝 산업’이라면 온라인 마켓은 새로운 ‘디지털 세상’이고, 신세계가 이런 디지털 전쟁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그동안 오프라인 최강자였지만 이제 ‘온라인 DNA’ 이식을 통한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미래의 유통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그대로 내비친 것이다.

●‘지금 얼마냐 보다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잣대
정 부회장의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도전이자 기회, 한편으로는 경영의 위협이기도 했다. 3조4400억 원짜리 초대형 M&A 딜은 신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조 단위 거래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결단에는 온라인 시장이 신세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000억원에 불과했던 쿠팡이 10년 만에 100조원 회사가 되는 것을 숨죽이면서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유튜브로 진행된 2021년 1월 신년사에서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근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신세계 제공


그에게 이베이코리아는 기회와 시간을 사들이는 모험과도 마찬가지였다. 급격하게 재편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일단 몸집부터 불려야만 했다. SSG닷컴과 이베이코리아를 합치면 온라인 2위 사업자가 된다. 정 부회장은 5년 뒤, 10년 뒤 이커머스 시장에서 남을 기업은 3개 안팎으로 내다봤다. 대기업의 오너 경영자가 아니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과감한 의사 결정이었다.

쿠팡의 급격한 성장을 주시한 정 부회장은 “습관을 파는 회사가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되뇌었다. 유통업에서 가장 하수(下手)는 물건을 파는 것이고, 제일 고수(高手)는 습관을 파는 것이라는 게 정 부회장의 지론이다. 소비자가 편리함에 길들여져 습관을 매매하는 것이 미래 유통업의 판도를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라는 생각이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스타필드, 스타벅스 등 오프라인부터 SSG닷컴, 이베이코리아, W컨셉, SI빌리지 등 온라인까지 고객들이 모든 쇼핑을 ‘신세계’만으로 할 수 있는 쇼핑모델을 구축하게 됐다. 정용진의 미래사업 포트폴리오 완성에 방점을 찍는 것이 이베이코리아였다.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선 첫해인 2010년 “오프라인 유통 리딩 기업을 넘어 온라인 시장에서도 리딩 기업이 될 것”이라는 다짐이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정용진이 꿈꾸는 ‘신세계 유니버스’의 블루프린트
“우리의 경쟁자는 방송국이자 야구장입니다. 그리고 극장입니다.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2016년 스타필드 하남 개막식에서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신세계 제공


2016년 9월 스타필드 하남을 오픈하면서 정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2010년 신년사에서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낯선 ‘복합쇼핑몰’을 미래의 먹 거리로 제시하면서 세상에 없던 쇼핑몰을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에선 넓은 부지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갖춘 복합쇼핑몰이 대세였지만, 한국에선 백화점과 마트에서 대부분의 소비가 이뤄졌을 때다.

올 2월 프로야구단 SSG랜더스의 구단주가 된 정 부회장은 음성기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클럽하우스’에서 “야구가 끝난 뒤 관중들이 그냥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아쉬웠다. 돔구장과 스타필드를 함께 지어 고객의 시간을 10시간 이상 점유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경기가 있는 날엔 돔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경기가 없는 날엔 콘서트나 이벤트를 즐기며, 바로 옆 스타필드에서 쇼핑과 식사, 레저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에 호텔까지 지으면 10시간을 넘어 하루 종일 고객은 ‘신세계 유니버스’에서 살게 된다. 고객이 ‘먹고 보고 사고 즐기고 잘 때’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않고 오로지 신세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모든 것을 불편함 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용진이 꿈꾸는 ‘신세계 세상(Universe)’인 것이다. 복합쇼핑몰과 야구단, 리조트, 드라마 등 보고 즐기는 경험을 선사하면서 고객을 ‘신세계 세상’에 꽁꽁 묶어놓겠다는 전략이다.

경기도 화성에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정 부회장의 야심은 미국의 대표 휴양지인 플로리다 주 올랜도를 모델로 한 것이다, 올랜도는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 MGM스튜디오, 애니멀킹덤 등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공원들이 즐비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객들은 고급 숙박시설인 리조트부터 예약해놓고 테마파크 티켓을 끊어 이곳저곳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1주일 정도 충분한 오락과 휴식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정 부회장이 경기 화성에 지을 국제테마파크에서는 고객들의 시간을 1주일 동안 점유하면서 ‘신세계 유니버스’에서 놀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019년 회성 테마파크 비전선포식에 이어 지난 3월엔 토지매매 계약을 맺었다.

정용진 부회장이 “나랑 하나두 안 닮았음”이라고 하는 ‘부캐’(부캐릭터) 제이릴라와 함께 서 있는 사진. 정용진 인스타그램


SSG닷컴에서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크루아상을 아침으로 먹고, 이어 사이렌오더로 테이크아웃 주문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한다. 점심은 노브랜드버거에서 NBB시그니처 버거를 먹고, 퇴근길엔 지난 밤 SSG닷컴에서 주문한 비디비치 화장품을 신세계 본점에서 픽업한다. 해외 여행을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집에서 ‘라방’으로 신세계면세점 내수판매 특별상품을 ‘득템’하며 L&B맥주를 마시면서 SSG랜더스 야구경기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모든 결제는 SSGAPAY로 하는 것이 ‘신세계 세상’에서 사는 고객의 하루 일상이다.

●불황기에 공격적인 고급호텔 투자 눈길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호텔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늘 길이 막히면서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상황에서 서울의 호텔에선 빈 방이 넘쳐났다. 중저가 호텔 매물이 쌓인 가운데서도 정 부회장은 오히려 호텔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그것도 고급 호텔에 눈독을 들였다. 발상의 전환이다. 위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몸부림일까.

지난해 10월 그랜드조선 부산을 해운대에서 오픈한데 이어 포포인츠 명동점, 12월엔 그래비티 서울 판교의 문을 열었다. 올 1월엔 제주 중문의 켄싱턴 호텔을 인수하고 고급 리뉴얼을 통해 그랜드조선 제주를 오픈했다. 5월엔 6성급 최고급 호텔인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점을 열었다. 이로써 서울과 부산 제주에 9개의 호텔 체인을 갖게 됐다. 이런 공격적인 호텔 투자에는 양면성이 있어 보인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오히려 기회를 찾았던 이마트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호텔업의 부활로 ‘퀀텀 점프’를 하겠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속내다.

정용진 부회장이 올해 3월 SSG랜더스 창단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 신세계 제공


중저가 호텔보다는 고급 호텔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차별화된 서비스로 코로나 이후 시대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별한 체험을 선보이겠다는 역발상 투자가 언제 결실을 맺게 될지 관심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아닌 것은 빨리 접고 잘하는 것은 밀어주는 정 부회장 특유의 ‘올인과 스피드’ 전략”이라고 김민규 신세계 홍보실장은 풀이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경쟁 환경이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는 올해를 최상의 기회로 만들어 경쟁회사와 격차를 확실히 벌려 경쟁자가 쫓아올 의지를 확 꺾어놓겠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하던 농림부 관료 출신 강희석 씨를 이마트 대표로 영입한 것은 정 부회장이 신세계의 강한 순혈주의 전통을 깨는 시그널이었다. 느슨한 조직에 혁신 DNA를 심기 위해선 외부 수혈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베이코리아 인수 또한 외부 인재 발탁과 맞물려 있었다. 정 부회장은 하반기 전략회의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900명의 A급 인재를 단숨에 확보한 셈”이라며 “우리 사업에 꼭 필요한 A급 인재를 적극적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CEO들에게 앞뒤 재지 말고 고급 인재를 모셔올 것을 지시했다.

●SNS의 달인, 경영에는 리스크?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54만1000여명이다. 그는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한 신변잡기를 올리고 고객들의 소리도 듣는다. 정 부회장만큼 SNS를 통해 소통하는 대기업 오너 경영인은 찾기 어렵다. 2010년 SNS 활동을 시작한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팔로어들은 베일에 가린 대기업 오너의 일상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정 부회장은 SNS를 통해 한편으론 신세계 제품을 선보이면서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잦은 SNS 노출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말 한마디, 단어 하나가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5월 25일 요리한 우럭의 모습을 SNS에 올린 사진.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진 정용진 인스타그램


서울 청담동에 있는 개인 스튜디오는 정 부회장의 ‘아지트’다.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정 부회장은 한번에 4시간 30분 동안 머물면서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만들곤 한다. 손수 만든 요리를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올린다. 그런데 최근 우럭 요리 사진을 올리면서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적은 것이 논란을 초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아이들을 위로하면서 적은 글을 빗대면서 조롱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불거졌다. 댓글엔 악플도 꽤 달렸지만, 한편에선 ‘이마트에서 쇼핑 해야겠다’며 응원하는 반응 또한 적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한 문장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기업인으로선 이런 논쟁의 한복판에 서는 것이 경영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붙으면서 의도하지 않은 반응이 나온 것에 당황했다고 한 핵심 측근은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간담회에서 정용진 부회장과 악수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미안하다 고맙다’는 요리사들이 생물을 죽여 요리한 것을 놓고 ‘죽여서 미안하고 맛있어서 고맙다’는 것을 줄여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SNS 활동 반경이 큰 정 부회장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이런 표현을 갖다 쓴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그가 올린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가 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쟁은 확산됐지만 이번엔 ‘Sorry and thank you’라는 영어 표현으로 맞섰다. 정 부회장이 요리를 하면서 쓰는 표현임을 은근히 강조했지만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거세졌다. 통상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그동안 보아온 대기업 경영자의 처신이었다.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어쨌든 사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정용진 부회장이 6월 8일 자신의 안경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모습. 홍보실장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우리 홍보실장이 오해 받을 일하지 말란다’면서 SNS 상의 논란을 종식하기 위한 메시지 화법이 눈에 띈다. 사진 정용진 인스타그램


그런데 정 부회장은 느닷없이 안경 사진을 올려놓고 “홍보실장이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한다. 이젠 가운데 안경 올릴 때도 습관대로 가운데 손가락을 쓰지 않아야겠다”고 올렸다. 취재기자들에게 시달리는 홍보실장의 고충을 받아주는 형식을 빌리면서 안경을 고쳐 쓰는 오랜 습관을 이번 상황에 빗대 절묘하게 문제를 수습한 것이다. 악화된 외부 여론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리더로서 자존심을 지켜낸 것이라는 평가가 회사 안팎에서 나왔다.

정 부회장이 꿈꾸는 ‘신세계 유니버스’에서는 어떤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우리 곁엔 언제 성큼 다가오게 될지 궁금하다. 이런 우럭 SNS 논란도 없는 세상이 아닐까.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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