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파스타, 다른 모습을 품는 포용의 제스처 [김재희 기자의 씨네맛]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7-02 03:00 수정 2021-07-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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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루카’속 페스토 트레네테

디즈니·픽사 ‘루카’에서 줄리아와 루카, 알베르토(왼쪽부터)가 함께 페스토 트레네테를 먹는 장면. 루카와 알베르토는 이날 줄리아의 집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인간의 음식을 맛본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김재희 기자
《‘올드보이’의 최민수가 먹어야 했던 음식은 왜 하필 군만두였는지 궁금한 적 없나요? ‘줄리&줄리아’를 보고 뵈프 부르기뇽 맛집을 찾아본 적은요? ‘씨네맛’이 이런 호기심을 해결해 드립니다. 해당 음식이 선택된 이유와 연출 의도, 그리고 직접 맛볼 수 있는 곳까지 영화 속 맛에 대한 모든 걸 파헤칩니다. 》



지난달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루카’에서 두 주인공 루카와 알베르토만큼이나 중요한 ‘제3의 주인공’은 파스타다. 파스타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바다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이탈리아 해안가 마을로 나온 루카와 알베르토가 인간 친구 줄리아의 집에서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가 해준 페스토 트레네테를 먹는 장면이다. 인간의 음식을 처음 맛본 이들은 손으로 기다란 면을 집어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는다. 순식간에 소스 흔적도 없이 접시를 싹 비울 정도로 페스토 트레네테는 맛있었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이 파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에 닿으면 바다괴물로 변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는 비를 맞으면서 정체가 드러난다. 바다괴물에 적대적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친구가 된 줄리아와 루카, 알베르토를 보고 공포심을 거둔다.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페스토 트레네테를 대접한 마시모, 처음 이를 맛봤을 때처럼 신난 표정의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다양성의 포용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서면 인터뷰에서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영화 끝에 마시모가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트레네테를 대접하는 건 진정한 포용을 나타내는 따뜻한 제스처”라고 설명했다.

유년 시절의 우정을 그리고자 했다는 감독은 왜 핵심 소재로 파스타를 활용했을까? 이탈리아 북서쪽 리구리아주의 주도 제노바 출신인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와 함께 자랍니다. 점심,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죠. 이탈리아 각 지역에는 고유의 파스타 면 모양과 소스가 있어요.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맛있는 요소인지 상상이 가죠?”

이탈리안 레스토랑 ‘에노테카오토’의 제노베제 바질페스토 파스타.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페스토 트레네테는 제노바의 전통 파스타다. 페스토의 주 재료인 바질과 잣이 제노바에서 잘 자라 처음 이 소스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제노바 인근 해안가 마을이기에 페스토 트레네테를 택했다. 통상 리구리아주에서는 페스토에 ‘트로피에’ 면을 많이 사용하는데, 루카에서 면발이 얇고 판판한 트레네테를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트로피에는 모양이 짧고 꼬불꼬불해서 재밌지 않을 것 같았어요. 루카와 알베르토가 아주 지저분하게 손으로 집어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서 국수 같은 트레네테를 택했죠.”

우리나라에서 제노바식 페스토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에노테카오토’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ICIF’(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1년간 리구리아주 키아바리의 식당에서 일한 강성영 셰프(62)가 2014년 차렸다. 시그니처 메뉴인 ‘제노베제(’제노바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바질페스토’는 재료에서부터 제노바 향기가 물씬 난다. 제노바 페스토 파스타만의 특징인 감자와 줄기콩이 들어 있다. 소스가 잘 묻도록 생면을 택했다는 강 셰프의 말대로 생면에 덧입혀진 페스토 향이 입안에 강하게 퍼진다. 면과 감자를 함께 씹으면 감자 특유의 단맛과 푸석한 식감이 어우러지면서 기존에 맛보지 못한 페스토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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