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신간 아닌 개정판… 출판사들 지원금 타내려 ‘꼼수’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7-01 03:00 수정 2021-07-0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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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부서 단행본 103억 지원… 응모기준 안 지키는 출판사 적잖아
개정판 안 밝히고 지원했다 취소돼
‘90년생…’ 이중계약 작성 사례에 표절문제로 선정 무효되기도
“나중에 걸려도 일단 지원” 분위기… 문체부 “부정 없도록 철저 감독할것”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도서 2종에 대해 세종도서 선정 사실을 철회하고 대체 선정했기에 공고합니다.”

2019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홈페이지에는 이런 공고가 올라왔다. 종당 800만 원 이하의 책을 구입해주는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 사업에 선정된 A출판사의 책 2종이 신간이 아니라 개정판인 사실이 뒤늦게 들통난 것. 애당초 개정판은 선정 대상이 아니라고 진흥원이 알렸지만 A출판사는 이를 무시하고 지원했다가 선정이 취소됐다. 진흥원 관계자는 “사업 심사위원과 직원들이 사업 선정 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지만 지원하는 책 종수가 많다 보니 놓치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출판사가 제보해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출판사 웨일북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임홍택 작가(39)와 이중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출판계 관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부정 사례가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문체부가 진흥원을 통해 종이책 단행본을 지원하는 사업은 크게 3가지다. 올해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 85억 원,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10억 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8억 원으로 총 103억 원이 투입된다. 출판사가 각 사업에 응모하고 계약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 예술원 직원들이 1차적으로 검토한다. 이후 전문 심사위원들의 회의를 거쳐 선정작을 정한다. 한 심사위원은 “심사위원 수십 명이 응모작 수천 편을 며칠에 걸쳐 검토한다”며 “특정 작품을 골라 지원해야 하는 만큼 작품의 우수성과 독창성, 완성도를 꼼꼼히 살펴봐야 해 다른 심사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출판사들이 정부 사업에 응모할 때 지원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B출판사의 책은 다른 출판사가 표절 문제를 제기해 지원 선정이 취소됐다. C출판사 책은 세종도서 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 출판사가 저자와 계약을 해지해 역시 선정이 취소됐다. ‘90년생이 온다’처럼 정부 지원 사업에 응모하려고 기존 계약서 외에 별도로 계약서를 작성한 문제는 처음 불거졌지만, 드러나지 않은 유사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흥원은 사업을 공고할 때 ‘자격 미달 시 선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지만 일부 출판사는 나중에 걸리더라도 일단 지원하자는 분위기다. 한 작가는 “발각되기 전까지 밀어붙여 보자는 생각을 가진 출판사들이 있다. 행정 업무에 미숙한 신인 작가는 부정 지원한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출판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정부 지원 없이는 출간이 힘들다는 생각에 악질 출판사들이 이런 행태를 벌이곤 한다”며 “제대로 조건을 갖춰 지원한 출판사 입장에선 일부가 물을 흐리는 것 같아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한편 문체부는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던 ‘90년생이 온다’에 지급한 500만 원을 환수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김혜수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향후 지원 시 계약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부정 사례가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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