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연령대별 ‘약한 고리’ 파고든다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7-01 03:00 수정 2021-07-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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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엔 “검찰입니다” 3040엔 “저리 대출” 50대이상엔 “아빠, 난데…”
금감원 피해자 620명 설문조사



“OO은행 정부지원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3000만 원을 상환해야 합니다.”

부동산 투자 등을 위해 목돈이 필요했던 40대 A 씨는 한 시중은행 이름으로 온 안내 문자에 속아 3000만 원을 송금했다. 돈을 빌려준다는 ‘은행’은 “보증보험 등의 기관에 공탁금 및 인지세를 먼저 납부해야 한다”며 추가로 2820만 원을 요구했다. 6000만 원 가까운 돈을 보냈는데 약속한 대출은 없었다. 자금이 절박했던 A 씨는 잘 짜여진 사기 각본에 속수무책 당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의 연령과 경제적 상황, 심리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회공학’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금융감독원이 보이스피싱 피해자 6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별로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유형이 달랐다. 주택 마련 등을 위해 자금 수요가 많은 30대와 40대의 경우 A 씨처럼 문자로 금융사를 사칭한 ‘저리 대출’ 사기 피해가 많았다. 자녀가 장성한 50대 이상은 가족을 사칭하며 접근하는 보이스피싱에,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이하는 전화로 검찰을 사칭하여 범죄에 연루됐다고 압박하는 사기 피해에 취약했다.

“아빠 뭐 해. 나 주원(가명)인데, 폰이 고장 나서 임시 폰으로 연락했어. 문상(문화상품권) 구입해야 하는데 아빠 폰에 앱(애플리케이션) 깔고 확인 좀 눌러줘.”

50대 B 씨는 올해 3월 말 아들 이름으로 다급하게 온 문자에 속아 1500만 원을 잃었다. 아들의 이름 등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 사기를 의심하지 못했다. 이렇게 내려받은 앱은 휴대전화를 원격조종하는 ‘악성 앱’이었다. 사기범은 앱을 통해 개인정보를 훔친 뒤 오픈뱅킹을 이용해 B 씨 계좌의 돈을 빼갔다.

사회초년생 20대 C씨는 ‘서울 모지검 최 검사’를 사칭한 사기범의 연락을 받았다. ‘최 검사’는 “C 씨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중고나라 사기에 이용되고 있고, 수사를 위해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황한 C 씨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신분증 등을 제출했다. 사기범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은행계좌의 예금과 C 씨 명의 대출로 5000여만 원을 빼갔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접근 수단 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45.9%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전화(32.5%), 메신저(19.7%) 등 순이었다. 20대 이하 피해자들의 55.9%는 전화로 접근한 사기 피해를 당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고 30분 이내에 알아차린 경우는 전체의 26%에 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 연령대별 생애주기적 특징을 악용하고 있다”며 “검찰, 경찰, 금감원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전 이체를 요구하거나 금융 거래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금융사는 저리 대출 광고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면 즉시 금융사 콜센터, 경찰청(112), 금감원(1332)에 전화해 계좌 지급 정지를 신청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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