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묻지마 작업중지명령’, 산재예방에 도움 안 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입력 2021-06-29 03:00 수정 2021-06-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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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이달 초 정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반드시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각종 사고가 잇따르자 내놓은 해법이다.

하지만 중대재해 발생으로 정부기관에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작업중지명령을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망재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 원인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작업중지명령부터 내리겠다는 발상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게다가 중대재해 실정법을 도외시하는 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법령 어디에도 규정돼 있지 않음에도 정부는 작업중지명령 해제 조건으로 노동조합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작업중지명령의 해제권을 사실상 노동조합에 주는 꼴이다.

예방적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작업중지명령을 ‘제재’ 목적으로 법에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산재예방 선진국에서 작업중지명령은 법적 절차와 요건에 따라 ‘예방’ 목적으로만, 그것도 신중하게 행사되고 있다. ‘묻지 마 작업중지명령’은 보수만으로도 충분히 붕괴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어떤 건물에 철거 명령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전에는 작업중지명령이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수단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 정부에서 ‘제재’ 목적으로 돌변하였다. 게다가 작업중지명령 해제도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과 무관한 사안과 부당하게 결부시키고 있다. 기업에서는 작업중지명령을 해제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번갯불에 콩 볶듯이 재해방지 대책을 수립한다. 작업중지명령이 형식적인 안전조치와 안전관리의 왜곡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나서 사후 제재에만 몰두하고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이다. 더욱이 제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재발 방지를 위한 원인 조사는 등한시하는 것은 재해로부터 재발 방지의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인도적 관점에서도 허용되기 어렵다. 작업중지명령과 그 해제 권한의 남용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약점을 이용하여 법치 행정을 형해화하는 처사일 뿐 산재 예방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

게다가 행정권은 법에 정해진 목적과 관련된 한도 내에서만 행사되어야 한다. 행정상 필요하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근거 없이 행정권을 행사하는 건 자의적 권한 행사와 다름없다. 자의적 행정으로는 신뢰받는 행정을 기대할 수 없다. 상식적이고 실질적인 작업중지명령을 촉구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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