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노조 추천 이사제’ 사실상 무산… 수출입은행도 안갯속

김형민 기자

입력 2021-06-22 03:00 수정 2021-06-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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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공약 맞춰 2017년부터 추진
국민-기업銀 등 번번이 도입 좌절… 수출입銀도 노사 이견으로 불투명
전문가 “취지 좋지만 현실적 한계… 노조 권한만 더욱 강해질 우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동이사제’에 발맞춰 추진된 금융권의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이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조 추천 이사제는 2017년부터 시중은행과 금융공공기관들이 도입을 추진했지만 소관 부처 및 주주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현 정부 임기 내 사실상 마지막 시도로 꼽히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도 노사 간 이견으로 제도 도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 노사는 지난달 말 임기가 끝난 나명현 사외이사의 후임 선정 작업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도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지 못했다. 노조 추천 이사 선임을 관철시키려는 노조가 청와대 출신 인사의 내정설이 돌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개시하기도 전에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공공기관 노조의 경영 참여 약속을 지킬 것을 정부와 여당에 촉구한다”고 했다.

수은 노조는 이미 지난해 1월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외부 인사를 추천했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당시 사외이사 최종 후보군에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포함됐지만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 최종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수은 관계자는 “현재 노사가 어떤 후보를 사외이사로 선정할지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 추천 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인물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제도다. 근로자 대표가 직접 사외이사가 되는 노동이사제보다는 노조의 개입 강도가 약하지만 노조를 대표하는 인물이 경영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금융권에서 근로자 권익을 높이고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이 활발하게 시도됐다.

하지만 금융권의 도입 움직임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KB국민은행 노조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네 차례 시도했지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IBK기업은행 노조도 2019년에 이어 올해 4월 도입을 추진했지만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의 반대에 막혔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행장이 후보를 금융위원장에 제청하면 위원장이 임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지난해 8월 노조 추천 인물을 최종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하려다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노조 추천 이사제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융권 도입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금융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경영 상황과 상관없이 노조의 요구 사항만 주장할 경우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 추천 이사제는 법으로 제도화돼 있지 않아 추진 동력을 얻기 쉽지 않다”며 “특히 금융권 노조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 권한이 강한 편이라 사외이자마저 노조를 대변하는 인물을 앉히는 것에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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