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부수는 비밀, 퇴직금 지급 꼼수… 내부서도 책잡힌 출판계

전채은 기자

입력 2021-06-16 03:00 수정 2021-06-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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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 종사자들이 말하는 병폐
연이어 터진 출판계 불투명성 논란, 내부서도 잘못된 구조 비판 이어져
‘저자에게 판매 정보 흘러갈라’… 담당 편집자에게도 판매량 ‘쉬쉬’
퇴직금-상여금 연봉에 포함하거나 판매 부진 탓하며 재고 불태우기도


직원들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하는 기업을 그린 웹드라마 ‘좋좋소’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A출판사의 신간 담당 편집자는 출간 이후 판매량을 모른다. 새 책의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일일이 그의 손을 거치는데도 정작 독자들의 반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너무 답답해 사장에게 판매량을 물었지만 “그런 걸 왜 묻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사장은 판매량을 체크하는 사내 부서에 편집자들에게 수치를 알려주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해외 번역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B출판사 편집자는 사장으로부터 “출판담당 기자들이 묻거든 해외 현지 에이전시에 통보한 판매량으로 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제보다 적은 판매량 숫자를 에이전시에 보고했기 때문. 출판사 관계자는 “에이전시를 통해 저자와 소통하는 번역서의 경우 판매량을 속이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최근 작가 장강명과 아작 출판사 사이에 인세 누락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출판계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유통구조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와 마케터, 디자이너 등 출판계 종사자 570여 명이 모여 있는 한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서다. 이 채팅방은 20년 이상 출판계의 온라인 커뮤니티 역할을 한 웹사이트 ‘북에디터’를 대체하며 새로운 정보 공유의 장으로 떠올랐다. 이직을 준비하는 편집자들이 다른 출판사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채팅방에서 출판사 직원들은 신간 판매량은 편집자가 시장 반응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수치인데도 일부 출판사들이 이를 쉬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편집자는 “그동안 재직한 출판사 중 절반은 판매부수를 편집자와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출판계에서는 편집자를 통해 판매량 수치가 저자에게 전달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 편집자는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판매량을 편집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며 “인세 누락 논란에서 보듯 저자와의 출판 계약에 문제가 있는 출판사들은 판매량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매출 정보와 직결된 판매량을 숨기는 건 탈루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강명 등 일부 작가들은 출판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계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일부 출판사의 문제를 전체 출판계의 문제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며 사업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일부 출판사의 ‘내부 갑질’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평소 직원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기로 유명한 한 출판사 대표는 판매 부진 책임을 묻겠다며 책 재고를 불태우는 ‘분서갱유’ 퍼포먼스를 촬영해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사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직원들에게 강요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갓 입사한 사장 2, 3세에게 특혜를 줘 입방아에 오른 출판사들도 있다. 인문서 전문 출판사의 김모 대표는 “최근 한 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자녀를 입사시키자마자 팀장급 연봉을 지급해 막내 편집자가 퇴사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사장 2, 3세와 달리 상당수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계약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출판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봉 등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한 편집자는 “연봉의 13분의 1 혹은 14분의 1을 따로 쪼개 퇴직금과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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