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100% 현지화-진정성 전략으로 이룬 세계 1위

김윤진 기자

입력 2021-06-16 03:00 수정 2021-06-1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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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니콘 센드버드 글로벌 진출 전략

토종 한국 스타트업 ‘센드버드’는 기업들의 스마트폰 앱 안에 사용자 간 채팅 기능을 탑재해주는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에서 정상에 올랐다. 현재 전 세계에서 센드버드의 채팅 솔루션을 이용해 소통하는 월간 사용자 수는 약 1억6000만 명에 달한다. 게티 이미지 제공

한국 B2B(기업 간 거래) 분야 최초의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인 센드버드는 기업용 채팅 서비스 글로벌 1위 회사다. 센드버드가 채팅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2015년, 채팅은 이미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익숙한 기술이었다. 국내외에서 와츠앱, 텔레그램,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라인 등 유수의 글로벌 채팅 앱들이 사용자 경험(UX)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메신저 기능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채팅 시장에서 센드버드는 전 세계에서 두루 통용되는 서비스를 선보이며 업계 1위 자리를 당당히 꿰찼다. 어떻게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시리즈 A∼C투자 유치를 성공으로 이끌고 세계 최고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센드버드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1년 6월 1호(322호) 케이스스터디를 요약해 소개한다.

○ 팀과 제품, 시장의 정렬
원래 센드버드의 전신이었던 ‘스마일패밀리’는 육아에 힘겨워하는 엄마들을 위한 정보 앱이었다. 영어 앱의 사용자가 가파르게 늘고 미국 육아 맘들의 호응을 얻긴 했지만, 2014년 말부터 성장이 정체됐고 누적 사용자도 25만 명 언저리에서 더 늘지 않았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창업자인 김동신 대표가 유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문을 두들겼으나 결과는 면접에서 탈락이었다. 면접관들은 ‘동양에서 온’ ‘미혼의’ ‘남성’들이 미국의 육아 맘들을 위한 정보성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당시 스마일패밀리 직원 10명 가운데 9명이 ‘2030’ 남성이었고, 대부분이 육아 경험조차 없었다. 이 같은 일침은 결정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제품과 시장의 궁합’은 맞을지 몰라도 ‘팀과 제품의 궁합’에 한계가 명백했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 시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육아 맘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의 수준부터 달랐다. 이는 시장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지, 고객의 섬세한 결을 느낄 수 있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서비스로선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이에 김 대표는 팀이 해결하기 어려운 ‘시장’의 문제를 버리고 그들이 자신 있는 제품의 ‘기술’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엔지니어 일색의 창업 멤버들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고도화한 채팅 등 원천 기술은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쇄 창업가인 이들은 육아 맘의 마음은 몰랐지만 기업의 고충,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마음만큼은 생생히 알고 있었다.

○ 문화적 의존도를 버려라
기술이 있어도 현지 기업 영업은 별개의 문제였다. 윤여정, 기생충, BTS 등 문화예술 영역에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이 입증되고 있지만 기술 영업의 세계에서는 이 같은 격언이 통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기업 고객을 확보하고 글로벌 서비스로 자리 잡으려면 국경과 업종을 초월해 모든 기업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 즉 ‘공통분모’를 찾아야 했다. 미국 엔터프라이즈 영업에 뛰어든 한국인 창업가들이 당면한 가장 크고 어려운 숙제는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한국의 색채, 문화적 의존도를 빼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지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미국 기업들과 소통할 땐 장황한 배경 설명이나 첨부파일 없이 ‘당신의 시간을 왜, 얼마나 써서 우리를 만나야 하는지’ 핵심만 밝혀야 했다. 관계 유지를 위해 에둘러 말하고,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신뢰 관계를 쌓는 한국의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뿐만 아니라 센드버드는 홈페이지 디자인과 UX 및 UI(사용자 인터페이스)도 100% 현지화하기 위해 수정을 거듭했다. 한국식 표현과 유행을 지우는 데만 무려 2년 이상이 걸렸다.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특정 해외 기업이 어설픈 굴림체, 번역기로 돌린 듯한 문장으로 홈페이지 회사 소개를 써놓은 것을 보면 믿음이 가지 않듯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인들은 매일매일 빠르게 변하는 소비재 브랜드의 광고나 마케팅에 노출돼 있기에 홈페이지의 표현, 폰트, 크기, 색상, 레이아웃 하나가 조금만 트렌드에 뒤처지고 문화적 이질감을 느껴도 바로 떨어져 나갔다.

이렇듯 센드버드는 디테일한 부분에서부터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모든 차이를 뛰어넘게 하는 영업의 만국 공통어는 결국 ‘진정성’이었다. 특히 미국 최대 소셜 커뮤니티인 ‘레딧’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이 빛을 발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동료 둘과 함께 일주일 내내 오전 9시부터 자정이 넘어서까지 레딧 사무실로 출근하며 이 회사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몰두했다. 이 같은 진심은 결국 통했고, 외부 솔루션을 쓰는 것에 회의적이던 엔지니어 매니저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센드버드는 창업자와 경영진이 해외 시장의 특성과 고객의 요구를 철저히 파악한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적 선택과 행동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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