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대주교 “교황, 北 방문 원해… 주선 적극 노력할 것”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6-14 03:00 수정 2021-06-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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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 ‘파격 임명’
교황과 직접 소통해와 신뢰 커
“亞출신 장관 한명뿐이라며 제안… 아시아의 높아진 위상 인정한 것”
8월부터 로마서 장관직 수행예정
文대통령 “한반도 평화 노력” 축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성직자성(省) 장관으로 임명한 유흥식 대주교가 13일 충남 서산시 해미국제성지에서 열린 미사를 집전 하고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제공

“교황님의 방북을 주선하는 역할이 맡겨진다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직자성(省) 장관에 임명되고 대주교로 승품된 유흥식 대주교(70)의 말이다. 유 대주교는 12일 대전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4월 바티칸에서 교황님을 알현했을 때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며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북한이 교황님을 초청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230여 년의 한국 가톨릭 교회사에서 한국인 사제가 교황청의 최고위급 성직자에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500년 역사를 가진 성직자성은 교황청 행정기구인 9개 성의 하나로 사제와 부제들의 모든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다. 사목 활동을 감독하고 심의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학교 관할권도 갖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그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에 얽힌 사연도 나왔다. 유 대주교는 “교황님께서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이 계신데 아시아 출신은 한 분뿐이라고 하시며 장관직을 제안하셨다”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의 높아진 위상을 교황청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전교구 홈페이지에 쓴 그의 서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교황님께서 발표하실 때까지 장관직 제안 사실을 비밀에 부치라고 하셔서 11일 저녁 7시까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주변 누구도 몰랐다. 8월 이후 행사 일정도 잡지 못하며 50일 동안 보안을 유지하느라 매우 힘들었다.”

대전교구에 따르면 유 대주교의 성직자성 장관 임명은 바티칸 내에서도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인사에는 한국인 성직자로는 드물게 교황과 직접 소통해온 유 대주교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해달라는 유 대주교의 초청을 계기로 이뤄졌다.

유 대주교는 올해 4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해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 시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이슈 등을 설명했고, 바로 이 자리에서 성직자성 장관 임명 사실을 들었다. 유 대주교는 “사제의 쇄신 없이 교회의 쇄신도 없다는 말은 항상 맞다”며 “교황님의 교황청 쇄신 노력을 힘껏 돕겠다”고 밝혔다.

유 대주교는 13일 최근 국제성지로 선포된 충남 서산시 해미국제성지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제게 무거운 역할이 주어진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다”며 “김대건 신부님과 순교자들이 한국 교회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교황님은 주변 성직자들에게 한국 순교자와 성지에 관해 자주 말씀하신다”며 “해미국제성지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대의원대회)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주교(오른쪽).천주교 대전교구 제공
유 대주교는 7월 말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출국하며 8월 초부터 성직자성 장관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통상 장관 임기는 5년이다. 성 장관은 추기경 직책으로 분류돼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으로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만 있는 상태다. 염 추기경은 12일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에 유 대주교님 개인뿐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뜻깊은 큰 선물을 받았다”는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세종시 교구청을 찾아 전달한 축전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대주교님의 사목 표어처럼 차별 없는 세상, 가난한 이들이 위로받는 세상을 위한 빛이 되어 주실 것을 믿는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오신 분이어서 더욱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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