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유영]서민 울리는 부동산 폭정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6-10 03:00 수정 2021-06-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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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요새 결혼 앞둔 사람에게 물으면 안 되는 게 있다. 바로 신혼집에 관한 질문이다. 집값이 너무 올라 신혼집 마련까지 겪을 고충을 짐작하기에 자기 집인지, 전세인지는 물론 어느 지역인지 묻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오죽하면 ‘등기신분제’라는 자조까지 나올까. 자기 집 등기를 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이제는 넘지 못할 벽이 생겼다. 등기된 집이 있어도 그 집이 어디인지에 따라 사람들은 집으로 계급화되다시피 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올해 1월 “국민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부동산 문제에 처음 사과했고 5월에도 “(재·보궐 선거 참패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특위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집값 오름세는 아직도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이는 수요가 여전한데 공급은 늘지 않는 상황에서 갖가지 규제까지 더해지면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매년 개편한 양도소득세가 대표적이다. 주택 보유 지역과 기간, 주택 수에 따라 양도세가 달라져 세무사조차 계산하기 쉽지 않다. 거래에 따라오는 양도세는 거래세로 보고 보유세가 높으면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양도세가 소득세에 가깝다는 입장이어서 세율을 잇달아 올려 급기야 이달 1일부터는 양도세 최고세율이 75%에 이르게 됐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집주인들이 지방 아파트는 내놓을지언정 똘똘한 아파트는 증여세를 물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시장에 던지지 않는다. 올 하반기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등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매물 잠김까지 심해지며 시장은 ‘거래 빙하기’로 들어설 조짐이다. 연초 매물 유도를 위한 양도세 완화설이 잠깐 나왔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즉각 부인했다. ‘집으로 돈 버는 사람 없게 하겠다’는 철학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 불로소득은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최근의 총리 발언이 이를 드러낸다.

이달 1일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설계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 모르겠다. 양도세 외에도 종합부동산세의 세율 역시 최고 6%로 올라 취득세(최고 세율 12%·지난해 8월 시행)까지 감안하면 주택의 ‘매입-보유-처분’의 모든 단계에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체계가 됐다. 여기에 전월세 신고제까지 이날부터 시행돼 임대차법까지 완결됐다.

겹겹의 규제에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경제부총리는 최근 “집값이 오를 데까지 올랐다”고 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집값이 떨어졌다는 이유지만, 사람들은 집값이 한때 떨어져도 오를 때는 이전 하락폭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급등할 수 있음을 이번에 경험했다. 더욱이 지금은 당시보다 금리가 낮고 수도권 공급 물량도 당시보다 적을뿐더러 규제 역시 월등히 많아졌다. 한 경제학자는 최근 해외 경제학자들과의 화상 토론에서 ‘극단적인 규제’가 단기간에 쏟아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무주택자들은 극심한 자산양극화에 허덕이며 절망한다. 대통령이 진정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 시장 거스르는 부동산 철학부터 다시 살펴봤으면 한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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