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벌집이 아이들에게 숲으로 오라고 손짓해요”

전승훈 기자

입력 2021-06-09 03:00:00 수정 2021-06-09 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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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 키즈 아카데미 ‘숲이 오래’
기존 나무 살리고 놀이터도 숲처럼 꾸며
디자이너 “아이들에 자연을 돌려주고파”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곤충은 벌이라고 한다. 요즘 봄꽃의 개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순차적으로 피어야 할 꽃들이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진다. 몇 달간 꿀을 모으며 살아가던 꿀벌들에겐 꿀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미국에서 최근 10년간 꿀벌의 개체 수가 40%가량 감소했다. 영국에서도 2010년 이후 45% 정도의 꿀벌이 사라졌다.

지난달 17일 개원한 경기 포천시 광릉의 국립수목원 어린이 환경생태교육을 위한 교실 ‘숲이 오래’. 국립수목원 제공
꿀벌은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하는데, 꿀벌이 생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면 인류도 생존할 수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의 70%가 꿀벌의 화분 매개 작용에 따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시 소흘읍 광릉의 국립수목원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왼편에 있는 벌집 모양의 앙증맞은 이색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들에게 숲과 자연,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키즈 아카데미인 ‘숲이 오래’다.

“벌이 멸종하면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지구의 산소 공급과 먹거리 제공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생물종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벌집형 매스와 건축 디자인 원리를 선택했습니다.”

‘숲이 오래’의 건축설계를 맡은 지음플러스 김성훈 소장(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은 프랑스 유학 후 유럽에서 10년 이상 활동해 온 도시환경 건축 전문가다. 그는 자연과 생태, 건축이 공존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을 수목원 키즈 아카데미 설계에 적용했다.

원래 부지에 있던 낙우송과 전나무 등을 옮기거나 베어내지 않고 건축물을 배치하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 그래서 하나의 큰 건물보다는, 육각형 모양의 벌집 형태로 방을 여러 개 만드는 설계를 했다.

육각형 벌집 모양의 테이블이 놓인 키즈아카데미의 실내 공간. 국립수목원 제공
“기존에 있던 나무도 살리고, 육각형 벌집 구조를 통해 생태계에서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하는 벌을 상징하고 싶었습니다. 기존의 정사각형 직사각형 공간이 아닌 다양한 육각형 모듈들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생태적 상상력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이 오래’는 ‘숲이 아이들에게 오라고 손짓한다’는 뜻이다. 오래된 나무를 그대로 살려 벌집 모양으로 지은 건물은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숲속 트리 하우스(tree house)처럼 보인다. 외부는 친환경 탄화목(그을려 나뭇결이 드러나는 목재)으로 마감해 주변 나무와 어울리도록 했다. 옆에 있는 계곡을 고려해 건물의 아랫부분은 필로티 구조로 만들었고, 층고가 다른 필로티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조성됐다.

또 건물 뒤편에는 원래 있던 아름드리나무의 그늘과 벌집 형태의 건물 구조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야외 테라스 무대 공간이 탄생했다. 지붕의 경사면을 통해 빗물을 받아들여서 재활용하는 ‘레인가든’은 벌집형 물홈통, 빗물 저금통으로 아이들이 물의 소중함을 재밌는 놀이로 배울 수 있게 한 시설이다. 건물 앞에는 지오돔과 오감체험 텃밭 ‘키친가든’, 곤충호텔을 곳곳에 배치해 식물과 곤충의 서식과 삶을 관찰하고 볼 수 있도록 했다.

인테리어는 영국 런던예술대(UAL) 출신 공간디자이너 장소율 씨(32·우진아이디)가 맡았다. 벌집 모양의 육각형 테이블, 천장에 매달린 숲처럼 생긴 구조물을 헤치며 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 향기로운 편백나무 조각에 빠져 놀 수 있는 욕조, 나이테를 형상화한 테이블 등이 숲속에 온 듯한 분위기를 낸다. 나무 무늬 프린트를 한 포스코 강판으로 마무리한 벽면은 칠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장 씨는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로 마스크가 일상화돼 버린 상황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이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작은 화면이 아이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는데, 나무와 숲, 생물과 같은 자연을 아이들의 삶의 공간에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포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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