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포기한 20만평 ‘거제 해양신도시’ 완공 눈앞[최영해의 THE 이노베이터]

최영해기자

입력 2021-06-06 09:00 수정 2021-06-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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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90개 면적 바다 메워 20만평 신도시 만든 사람
박병준 빅아일랜드 대표의 성공 스토리
인허가 도장만 5년 동안 800개… ‘10년 프로젝트’ 완공 눈앞
거제 고현항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한 동력은 기업가정신
“해양과 만나는 지점만 보이면 미래 도시부터 떠올라요”


거제에서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고현동은 항만을 끼고 있다. 1980년대 삼성중공업이 조선소를 만들면서 매립한 지역이다. 인구 25만 명이 사는 도시, 한국 조선(造船) 산업의 메카인 거제도는 조선 업황의 부침에 따라 울고 웃는다. 한때 한국 경제의 국부(國富) 창출을 맡았던 조선업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거제도 또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일자리가 없어지자 사람들도 밀물처럼 빠져나갔고 공실률은 급증했다. 지역 경기가 곤두박질 친 것은 물론이다. 조선업이 다시 회생의 몸짓을 꿈틀하는 지금, 거제도의 지도를 바꾸는 역사(役事)가 벌어졌다.

거제의 중심지인 고현동 바로 앞에 위치한 30만 평의 거제도 고현항은 이제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다. 2015년 9월 바다를 메우는 매립공사에 착공해 지금까지 축구장 90개 면적의 바다를 땅으로 만들어냈다. 그 위엔 3개의 아름다운 공원과 30여개 동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리조트, 상가, 크루즈 선착장이 들어서게 된다. 총 3단계 공사 중 2단계 공사까지 마무리되고 마지막 항만주변 공사만 남아 있다. 바다였던 이 곳에 지금은 아파트를 비롯해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분양권 프리미엄은 이미 1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딱 이럴 때 어울리는 말 같다. 총사업비만 7500억원이나 되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현장, 지난 6년 동안 이 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삼성이 포기한 공사에 눈독을 들이다
거제 고현항을 매립해 축구장 90개 면적의 땅을 만들어낸 박병준 빅아일랜드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10년 프로젝트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18만평 부지에는 3개의 공원과 아파트 오피스텔 리조트 백화점 등 신도시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박병준(49) 빅아일랜드 대표는 기억하기 싫은 10년 전을 떠올리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금융기관을 모두 돌아다녔지만 한 칼에 문전박대 당했어요. 있는 거라곤 바다만 덩그러니 있는데 뭘 담보로 돈을 빌려주겠어요? 바다 위에 도시를, 그리고 공원과 아파트, 리조트를 만들겠다고 대출을 해달라고 하니 나를 무슨 ‘봉이 김선달’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는 왜 거제 앞바다를 선택했을까?

“거제하면 조선소잖아요. 한국의 주력 산업이고 큰 배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벌고 고용을 창출하는 곳이죠. 하지만 거제를 가보면 도시라곤 딱 1980년대 수준이에요. 우후죽순으로 개발돼 볼품도 없고 주변 환경이라곤 바다 빼곤 별로 쾌적하지가 않았어요. 조선업에선 제일 중요한 게 발주처의 감독관입니다. 대부분 외국 회사인데 가족까지 포함하면 1만 명가량 거제에 정주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일한 뒤 편안하게 살고 즐기고 노는 공간이 절실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바다 위 신도시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공대(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공학을 전공하면서 유학 생활을 한 박 대표는 이런 점을 사업과 연관시켰다. 감독관의 주거 여건이 조선 발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 그는 1980년대 우중충한 도시에 머물러 있는 거제를 미래의 신도시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금융기관에서 모두 퇴짜를 맞고 난 뒤 6개월 동안 계획서만 만들었어요. 만들고 찢고, 또 만들고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내가 그린 미래도시 청사진을 들고 건설회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림산업으로부터 토지 완공 후 매각계약서를 만들었지요. 또 끈질기게 문을 두드려 롯데그룹과는 쇼핑몰 부지 계약을 했고요. 2개 계약서를 들고 금융회사를 다시 찾아갔어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몇날 며칠을 심사하더니 마침내 계약서를 담보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내줬어요.”


●인 허가 도장 800개, 최종 승인까지 5년 걸린 첩첩 규제

은행에서 겨우 대출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부 부처들의 인가와 허가를 받는 데 또 5년이 걸렸다. 바다를 매립해 도시를 만드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일이었지만 정부의 규제가 이리 심한 줄은 막상 사업을 시작한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매립 전 거제 고현항의 사진. 2010년 12월 부산가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이 항을 오가던 4개 선사는 모두 폐업 신고를 해 해양수산부가 항만재개발사업단지로 선정했다. 사진 빅아일랜드 제공


“2011년 11월 도시개발 계획을 입안했는데 2015년 9월 공사에 착공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습니다. 인 허가에만 꼬박 5년이 흘렀어요. 무진장 더디고 고단한 작업이었죠. 나중에 세어보니 도장만 800개 정도 받았더군요. 이걸 5년 동안 받으려고 이 곳 저 곳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물론 거제 관할 도청인 경상남도, 국토교통부, 환경부에 기획재정부까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 부처들은 모두 우리 사업을 모니터링하게 됐습니다.”


박 대표는 특히 해수부의 중앙항만심의의결기구와 국토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마치 법원에서 헌법재판소 기능을 맡는 것처럼 통과시키는 과정이 까다롭고, 조건도 많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정부 부처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 게 5년이 되니 이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이 사업만큼은 꼭 이루고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해 계속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사실 정부의 항만재개발사업 기본계획 중 항만매립 사업은 당초 삼성중공업이 하겠다고 나선 사업이었다. 하지만 사업성이 불투명하고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아 2010년 포기하고 말았다. 거제시와 해수부가 삼성 대신 맡을 사업자를 찾고 있던 중 박 대표가 거제시를 찾아가 “제가 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 사업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삼성이 왜 중도에 포기했는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깨닫게 됐다”며 “골리앗과의 싸움 한복판에 내가 서 있는 것을 알고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거제시가 이 사업에 10% 지분을 갖는 주주로 참여하게 되면서 그나마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공사 착공하니 조선업 불황 암운(暗雲)

바다를 메워 도시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박 대표는 또 한 번 고비를 맞아야 했다. 2015년 6월 정부로부터 사업을 모두 승인 받은 뒤 딱 3개월 후 첫 삽을 뜨고 1단계 공사에 착공했다. 하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도 이런 오비이락이 있을까.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조선업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 정책을 단행했고, 조선업의 메카인 거제는 바로 직격탄을 맞았다. 조선 근로자들은 떠나고 빈방이 넘쳤다. 지역 경제는 쑥대밭이 됐고, 추가로 돈을 대출해줘야 하는 금융회사는 한순간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공사는 시작했는데 지속 가능할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따가웠다. 뒷골이 당겼다. 박 대표 주변에선 “이번 파고는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020년 6월까지 2단계 공사가 끝나 12만 9000평의 바다가 매립됐고, 지금은 5만3000평의 3단계 공사가 한창이다. 2023년에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되면 신도시가 탄생한다. 사진 빅아일랜드 제공


박 대표는 전략을 급히 수정했다. 공사를 1단계, 2단계, 3단계 등 단계별로 진행하기로 방향을 급속히 틀었다.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됐지만 1단계 부지를 완공해 대림과 롯데에 매각한 대금으로 PF 대출 1850억원을 상환했다. 2016년 9월 2단계 공사에 착공할 때는 상황이 더욱 안 좋아졌다. 조선 업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따낸 일인데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밤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불면의 밤을 책과 함께 씨름했다. 어차피 없어진 잠, 대신 조선 산업 공부에 매달렸다. 4~5년 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조선업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금융회사를 부여잡았다. 국제해사기구의 동향과 환경 규제 움직임, 해운 물동량 변화에 따른 조선업 수주 전망 등 공사가 진행되는 2~3년 동안 금융회사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는 “정말이지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준이 될 때까지 조선업을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박 대표는 결국 2단계 공사에서 PF 대출을 2000억원, 3단계 공사에선 1800억원의 대출을 받아낼 수 있었다.


●환경단체 반대에 설득에 또 설득
측면에서 본 고현항 매립 현장과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 이미 높은 경쟁률로 분양된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사진 빅아일랜드 제공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때 시작한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3명의 대통령이 바뀔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박 대표는 “제대로 된 도시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진심을 몰라줄 때가 제일 힘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왜 바다 위에 도시를 만드나’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굳이 해야 하나’ 등등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반대 목소리가 불거지면서 박 대표는 또 한번의 고비를 맞아야 했다.

이번에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12개 거제지역 시민단체들이 주관하는 토론회에 가서 욕을 먹고 고함 소리도 들었지만 진심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지역 언론의 날이 선 비판적 보도에 대해서도 팩트를 알리려고 동분서주하면서 뛰었다. 서울과 거제를 오가는 일이 일주일에 몇 번이나 됐다. 박 대표가 직접 신도시의 모델을 제시하고 고현항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설명하자 반대 목소리가 점차 수그러들었다. 정부가 계획한 사업에 뛰어든 것이라 도시에 환경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관광사업도 지원하는 구체 계획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박 대표는 “야당 때는 반대한 정치인들이 여당이 되면서 팔을 걷어 지원하기까지 했다”면서 “정치적인 논리가 끼어들 틈 없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이었기에 공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마지막인 3단계 공사에선 항만개발로 마무리되는 플랜을 밝혔다. 여기엔 연안여객과 최대 2만t급 크루즈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항만 여객터미널과 플레져보트 50척이 계류할 수 있는 마리나도 조성된다. 공사가 진행 중인 항만과 마리나는 기부체납 형식으로 거제시에 무상으로 기부된다.


●‘요코하마나 시드니 같은 해양도시 더 만들어야죠.’
거제도의 지도를 살짝 바꾼 고현항 재개발공사 현장. 거제도 지도와 함께 사업 현장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빅아일랜드 제공


박 대표가 이끄는 이 프로젝트는 ‘거제 고현항 항만재개발사업’으로 항만법에 따라 거제 고현동과 장평동 일원의 30만평을 매립해 개발하는 해양수산부 승인 사업이다. 1단계 사업 5만1000평은 2018년 9월에, 2단계 사업 7만8000평은 2020년 6월 준공됐다. 나머지 3단계 사업은 항만을 개발하는 것으로 5만3000평이 2023년까지 완공된다. 공정률로 따진다면 90% 가깝게 진척됐다. 지금까지 아파트 2162세대가 높은 경쟁률에 분양됐다. 완공되면 아파트 총 3700~4000세대가 분양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롯데자산개발이 매입한 8157평엔 대형 쇼핑몰이,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바로 인근에는 관광호텔 등 리조트가 조성된다.


해양문화관광복합도시로 거듭 나게 되는 고현항 항만재개발사업 조감도. 2023년이면 거제도에서는 이런 신도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빅아일랜드 제공


사업성만 고려하면 아파트나 상업용지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겠지만 공원을 3개나 만든 것이 눈에 띈다. 서울 여의도공원의 6분의 1 규모인 1만평의 중앙공원이 도시 중앙에 자리하고 풋살장과 테니스코트, 인라인, 인공암벽 등을 갖춘 8700평의 체육공원, 해수변을 산책할 수 있는 2.2km에 7410평의 수변공원이 조성된다. 단지 안에 2만6000평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사업성보다는 환경을 중시한 박 대표의 사업 철학이 담긴 것이라고 한다. 도시 안에 초등학교도 들어서게 된다. 바다 앞에 아파트만 빼곡한 부산의 명물인 마린시티와는 차별되게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박 대표는 이번 사업에 앞서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23만평의 바다를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년 반 동안 매립해 공장 부지를 조성한 사업을 벌인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총 7500억원이 투입된 이번 사업으로 거제에 3만개의 고용이 창출되고, 토목 공사까지 3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게 된다. 거제시가 거둬들이는 세수(稅收)가 5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10년 전 한 청년의 불타는 기업가정신이 일궈낸 놀라운 성과다.

박병준 빅아일랜드 대표가 회사 문 앞에 새겨진 회사 마크 앞에서 10년 프로젝트의 소회를 털어놓으면서 포즈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제 우리도 일본 요코하마나 호주의 시드니 같은 해양도시를 더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미래에셋이 여수 경도에 리조트 단지를 만드는 것도 앞서가는 기업인이 한참 앞을 내다본 결정입니다. 시민단체 때문에 공사가 지금 주춤하는 것 같은데 지역 발전과 관광사업 진흥을 위해선 결국엔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한국은 3면이 바다잖아요. 여행을 하다가 바다만 보면 어떤 도시가 좋을까 늘 고민하게 됩니다.”

외국에 나가 멋있게 만들어진 해양 도시를 보면 저절로 꿈에 부푼다는 그가 앞으로 어떤 도시를 구상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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