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이재용 사면’ 건의에 “공감하는 국민 많아”

황형준 기자 , 박효목 기자 , 서동일 기자 , 김현수 기자

입력 2021-06-03 03:00:00 수정 2021-06-03 03: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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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대표 靑초청 오찬간담회

4대 그룹 대표와 인사 나누는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4대 그룹 대표와의 오찬을 겸한 간담회에 앞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4대 그룹 대표들과 간담회를 한 것은 처음이다. 왼쪽부터 이호승 대통령정책실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 회장, 구광모 LG그룹 대표이사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건의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1시간 반 동안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과 함께한 오찬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 건의가 나오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지금은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대한상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다. 경제 5단체장이 (4월 청와대에 사면을) 건의한 것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도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다른 참석자도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앞으로 2, 3년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맞아 4대 그룹이 44조 원의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각 분야에서 투자를 늘려온 데 대해 “기업의 앞서가는 결정이 없었다면 오늘이 없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文, 이재용 사면론 기류변화… “형평성 고려해야”→“고충 이해”
“기업에 대담한 역할 요구 알아”… ‘44조 투자’ 발표후 분위기 진전
文 “한미 정상회담 하이라이트는 바이든이 직접 4대 기업 소개한것”
최태원엔 “우리 최회장님 큰힘 돼”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2일 4대 그룹 대표 오찬 간담회)

“여러 가지 형평성이라든지 과거의 선례라든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여론을 살피겠다는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 부회장 문제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판단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르면 8월 광복절을 계기로 이 부회장 사면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 44조 투자, 경제 회복 등에 달라진 文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등 4대 그룹 대표들과 오찬을 하면서 나온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지금은 경제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에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이 “경제 5단체장이 (4월 청와대에 사면을) 건의한 것을 고려해 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이 그 건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은 뒤 이 부회장 사면 얘기임을 확인하자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를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4월 말 공동 명의로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 부회장 문제를 둘러싼 문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4대 그룹의 44조 원 투자라는 지원 사격을 받은 것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이 최대 과제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 회복이 기업의 협조 없이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경제 회복에 대한 기업들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4대 그룹 대표들을 만나자마자 “방미 당시 4대 그룹이 함께해 성과가 참 좋았다”며 “한미 양국 관계가 기존에도 아주 튼튼한 동맹관계였지만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최첨단 기술 및 제품에서 서로 간에 부족한 공급망을 보완하는 관계로까지 더 포괄적으로 발전된 것은 굉장히 뜻깊은 일”이라고 운을 뗐다. 특히 “(방미의) 하이라이트는 (회담 뒤) 공동기자회견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4대 그룹을) 지목해 소개한 일”이라며 “한국 기업의 기여에 대해 아주 높은 평가를 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최 회장과 김 부회장 등에게 “생큐”를 세 차례 반복했다.

또 최 회장을 ‘우리 최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방미 때)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시작해 공동기자회견, 그리고 마지막에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까지 일정 전체를 함께해 주셨다”며 “아주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위기로부터 빠르게 회복하고 재도약하는 데서 4대 그룹의 역할이 컸다”며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어느 때보다 풍부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수혜적 관계였다면 (기업들 덕분에) 글로벌 공급망에 도움을 주는 동반자적 관계가 됐다”고도 했다. 기업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대해서도 “앞장서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투자 증가와 수소·전기차 생산 주도, 배터리 투자, 해운과 조선 투자가 “이제 빛을 보고 있다”며 “기업이 앞서가는 결정이 없다면 오늘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4대 그룹 띄워준 文 “사진 잘 찍어 주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4대 그룹 대표 오찬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호승 대통령정책실장,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안일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날 오찬은 문 대통령이 4대 그룹 대표들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고 거듭 감사를 표시하면서 1시간 반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오찬 시작 전 환담에서 사진을 찍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자 문 대통령이 취재진을 향해 “잘 찍어 주세요”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차도 수소차고 청와대 관용차도 수소차가 여러 대 있어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오찬 때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단독회담 때 나온 메뉴였던 크랩 케이크가 제공돼 눈길을 끌었다.


삼성 김기남 “반도체 투자결정, 총수 필요”
삼성 안팎 “美에 20조 투자 약속, 리더부재 탓 의사결정 지체 우려”

2일 문재인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 회동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이 언급되자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반도체는 대형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의 말에 또 다른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도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시대에 앞으로 2, 3년이 중요하다”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언급하기도 했다.

수십조 원이 드는 반도체 투자 자체로도 리스크가 적지 않다. 게다가 세계 경제의 ‘판’이 자유무역에서 ‘기술 냉전’ 시대로 바뀌고 있는 데다 기술 혁신으로 기존 시장이 파괴되고 대체되고 있어 리더의 결단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약 20조 원을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를 공식화했지만 외신의 관심이 몰렸던 공장 부지 발표는 하지 않았다. 아직 미국 의회에 56조 원 반도체 지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다 텍사스 주정부와의 협의도 마무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적으로 미국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해결해줄 리더의 역할이 없다 보니 의사결정이 늦어진다는 우려가 삼성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수십조 원 투자를 하려면 시장성 확보가 중요하다. 미국에서 반도체 위탁 생산을 맡길 애플, 아마존,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가 확보돼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애플은 삼성과 스마트폰 경쟁사라 삼성에 물량을 주는 것을 꺼린다. 애플 같은 대형 고객사들을 설득하고 수주로 이어지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라며 “까다로운 미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최고경영진은 이 부회장이 대화 상대로 나와야 움직인다”고 말했다. 반도체가 미중 갈등의 격전지가 되면서 투자 결단에 안보 이슈를 고민해야 하는 등 투자의 위험 요소가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대 그룹 고위 임원은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자산이 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는 모두 십수 년 전 재계 총수들의 위험을 무릅쓴 투자에서 비롯됐다”며 “지금도 수조, 수십 조 원 투자 결단으로 기업의 미래를 결정지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박효목 기자·서동일 기자·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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