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백신 복권’

장택동 논설위원

입력 2021-06-01 03:00 수정 2021-06-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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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은 필요하지만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시간을 내야 하고, 교통비가 들고, 통증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접종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보상이 필요할까.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설문조사에서는 25달러라는 응답이 28%, 100달러라는 응답이 34%였다. 접종률을 높이려고 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당근’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 오하이오주에선 최고 당첨금 100만 달러(약 11억 원)인 백신 복권 덕분에 접종자가 33% 늘었다고 한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경쟁적으로 접종 인센티브를 쏟아내지만 찬반 논란은 남아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백신 경품 중 가장 액수가 큰 것은 미국 뉴욕주의 백신 복권이다. 최고 당첨금이 무려 500만 달러(약 55억 원)다. 주택난이 심각한 홍콩에서는 부동산 기업들이 나서서 1080만 홍콩달러(약 15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백신 경품으로 내걸었다. 앞으로 백신을 맞은 덕분에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오게 된 것이다.

▷소박한 경품으로 접종을 유도하기도 한다. 인도 서부 라지코트에서는 접종을 받은 여성에게 금으로 만든 코 장식품을 제공하고, 동부 비지아나가람의 한 음식점에선 접종자에게 전통 요리 비리야니를 공짜로 대접한다. 태국에선 송아지를 경품으로 내건 지역도 있다. 미 백악관은 접종자에게 더 많은 소개팅 기회를 주는 방안을 업체들과 협의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는 형국이다.

▷백신 경품이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구시는 어제 접종자에게 건강검진권 등을 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축구 경기 관람권 제공, 온라인 쇼핑몰 할인 등을 검토하는 지자체도 있다. 잔여 백신을 맞으려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생뚱맞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률·예약률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예약이 진행 중인 60∼74세의 예약률은 68.5%에 불과하다. 11월까지 접종률 70%를 달성하려면 더 적극적인 접종 참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경품 제공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품 제공은 백신에 대한 신뢰 저하 등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UCLA 조사에서 응답자의 15%는 돈을 주면 오히려 접종하기 싫어질 것이라고 했다. 백신이 얼마나 위험하면 돈까지 줘가면서 접종을 독려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한번 경품을 주기 시작한 이상 추가 접종이 필요할 때마다 경품을 주지 않으면 접종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품은 ‘덤’일 뿐이다. 경품 유무보다는 코로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가족, 친구, 사회를 지킬 유일한 방패가 백신이라는 시민의식이 접종의 진짜 이유가 돼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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