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익]흡연자도 온전히 피해자로 바라봐야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입력 2021-05-31 03:00 수정 2021-05-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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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피해 모든 책임 개인에 전가…제조사 의무 제대로 살피지 않아
공단이 담배회사에 제기한 소송서 위험 방치한 회사들 잘못도 살펴야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 본인이 자초한 위험도 있고, 타인이 만든 위험도 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위험에 처하는 경우 역시 생긴다.

어떤 위험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대부분 “나는 왜 그 위험을 피하지 못했나”라며 머리를 감싸 쥔다. 위험을 만든 사람들이 분명한 경우마저도 피해자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불운일 뿐이라며 체념하는 경우를 본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회구성원 역시 이를 ‘개인 문제’로 취급하며 고개를 돌린다. 일종의 ‘집단적 타자화(他者化)’다.

사회구성원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간 문제 제공자가 있음에도 이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건강한 공동체는 개인 아픔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힘을 다한다.

이런 측면에서 유해물질 문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유해물질로 여러 피해를 겪었다.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은 지역주민의 절반이 암과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이곳은 담뱃잎 찌꺼기 건조 공정으로 인해 이런 피해를 겪었다.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평생 의료기기에 의지하는 등 여러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가해자 규명도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많은 피해자가 사망하고, 각종 질환으로 삶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우리는 철저하게 가해자의 잘못을 확인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피해자들이 피해를 본 게 자신만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공동체의 소중함에 힘을 얻고 삶의 용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향후에 같은 피해와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담배로 인한 흡연 피해는 흡연자가 위험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국가가 담배의 해로움을 알릴수록, 금연 지원을 위한 제도를 확대할수록 흡연자들에게는 ‘의지박약’의 굴레가 씌워진다. 어느새 흡연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자리로 옮겨져 있고, 가해자의 자리에 있어야 할 담배회사들은 논의 대상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담배회사들이 담배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제품의 위험을 줄였는지, 또 담배의 위험성을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알렸는지 등 제조사 의무를 다했는지는 제대로 살피지 않게 됐다. 담배회사들은 결국 흡연자 책임을 강조하면서 면죄부를 얻게 된다.

6월 2일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담배소송’의 첫 항소심 변론이 시작된다. 부디 재판부가 담배중독으로 흡연을 중단할 수 없던 상황에서, 결국 폐암 등이 발병한 흡연자들을 온전하게 피해자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또 그 원인을 제공하고 위험을 방치한 담배회사들의 잘못도 살펴주기 바란다. 5월 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지정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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