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구조 대장이 본 ‘中 죽음의 마라톤’… 예방하려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1-05-29 14:00 수정 2021-05-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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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상 대장(오른쪽)이 2004년 고 박영석 대장과 함께 남극점을 정복할 때 모습. 동아일보 DB.
5월 22일 중국 북서부 간쑤성에서 열린 100㎞ 산악마라톤 대회 도중 21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고산지대에서 열린 산악마라톤 대회에서 우박을 동반한 강풍과 폭우가 겹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대부분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산악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최근 등산 인구도 부쩍 늘었는데 준비 없이 산행하다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치상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대장(55)을 통해 안전한 산행에 대해 들어봤다.

이 대장은 1984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산악연맹에 가입해 산을 탔다. 고 박영석 대장하고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5개를 올랐고, 2004년 남극점 정복을 함께 한 산악인이다. 박 대장은 2011년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신 루트 개척에 나섰다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대장은 회사 생활을 하다 2019년 2월 경찰산악구조대가 없어지고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구조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먼저 트레일러닝에 대해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산악마라톤, 즉 트레일러닝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산은 30년 넘게 올랐습니다. 트레일러닝을 즐기는 후배들을 통해서 들은 바에 따르면 결국 제대로 준비하느냐 안 하느냐가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유명한 국제대회는 준비물을 제대로 검사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출전을 못하게 합니다. 배낭, 침낭, 보온 재킷, 간식, 음료수, 스틱…. 그 이유는 갑자기 기상이 악화될 때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최소한의 안전 장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에 대한 욕심으로 기본 준비물도 없이 대회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대회 도중 기상이 악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치상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대장이 북한산 인수봉 밑에서 포즈를 취했다.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제공.
이 대장은 ‘기본’을 강조했다. 산에선 산에 적합한 신발을 신어야 하고, 저체온증에 대비해 보온 재킷도 필수다. 스틱과 무릎 보호대 등은 부상을 막을 수 있는 장비다. 간식, 음료수도 있어야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산을 잘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도로를 달리다 산으로 오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산에 와서 무턱대고 빨리 가는 것에 우선을 두다보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목에 맞는 장비가 있듯 산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기본입니다. 특히 북한산 같은 돌산은 등산화도 바위에 잘 밀착하는 것을 신어야 합니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악 전문가들은 항상 비가 올 것에도 대비를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비가 오면 산에는 안 가는 게 맞습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호우주의보 이상의 기상특보가 발령되면 주요 탐방로를 차단해 입산을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산에 오르다 조난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새벽 4시 이전, 오후 5시 이후 입산 금지를 어기고 오르다 조난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규정을 어기는 것도 잘못됐지만 모두 헤드랜턴 등 기본 장비를 갖추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고다.

각종 자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발병 이후 등산 인구가 급증했다. 사고도 많다. 북한산 전체적으로 보면 하루 평균 1건. 등산객이 많은 주말과 휴일에 많이 발생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실직한 중장년층이 대거 산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등산인구가 늘었죠. 그런데 20여 년 전과 다른 점은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젊은 남녀들이 체력만 믿고 아무런 준비 없이 와서 황당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산 산행도중 근육경련이 일어났을 때 모습.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제공.
전체 국립공원 사고의 50%가 북한산에서 일어나고, 북한산 사고의 70%가 일반 국민들이라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사고가 등산화를 안 신어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이른바 실족, 낙상 사고다.

“준비만 제대로 하고 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많습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고 헬리콥터를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죠. 물마시고 좀 쉬면되는데 근육 경련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겁을 먹고 구조요청을 한 것입니다. 가서 응급처치 해주고 나면 그냥 웃음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대장은 “등산화도 아닌 스니커스를 신고 숄더백, 허리 색만 하고 500cc PET병 생수 하나만 들고 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보면 조금만 올라도 물집이 잡히는 등 발이 불편해지고 물도 없으니 근육 경련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산행하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2020년 사고를 분석해 안전사고저감대책으로 특수산악구조대에서 백운대를 탐방하는 등산객들에게 무릎보호대와 스틱을 대여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특수산악구조대는 백운대를 탐방하는 등산객들에게 무릎보호대와 스틱을 대여하는 시범사업을 올해부터 하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특수산악구조대 제공.
젊은 등산객들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문제점은 ‘경쟁’과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 인증샷’ 촬영이다.

“친구들과 와서 경쟁하듯 산을 오르다 실족, 낙상 등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동반자가 있을 경우 등산의 기본은 가장 체력이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천천히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여유를 가지고 안전하게 풍광을 구경하면서 오를 수 있습니다. 등산은 경쟁이 아닙니다.”

SNS에 올리려고 특정 위치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3주 전 쯤 북한산성 쪽에서 사진을 찍다 실족해 헬리콥터에 실려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분은 사망했습니다. 백운대 오리바위 등 특정 위치에 올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만 보면 아주 멋집니다. 그러다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하나에 목숨을 거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 대장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산은 경치도 구경하고 운동도 되기 때문에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오르지 말고 미리 산에 대한 정보를 얻어 사고예방에 신경을 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장비를 잘 갖췄다면 등산 관련 앱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북한산은 쉽게 올 수 있는 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최고 높은 봉우리가 836m밖에 안되고 전철, 버스 타고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산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산은 흙 밟을 일이 거의 없는 바위산, 속칭 악산입니다. 조심히 타야 사고도 없습니다.”
북한산 산행도중 왼쪽 발목을 다친 경우. 북한산국립공원특수구조대 제공.

최근엔 운동이 생활화되고 있어 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등산을 하다 심장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산행은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혈액 공급을 필요로 하는데 심혈관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부하는 심장 기능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평소 건강관리 및 산행 전 워밍업과 스트레칭 체조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산에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한편 트레일러닝(Trail-running)으로 불리는 산악마라톤은 당초 산길처럼 포장되지 않는 길을 달리는 스포츠였다. 언덕을 포함한 들이나 초원 등 언덕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험한 산을 달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대자연 속에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대명사가 됐다. 마라톤에서 파생한 트레일러닝도 한계에 도전하면서 희열을 느끼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에 맞춘 스포츠로 변한 것이다. 남들은 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란 점도 사람들을 끌어 들리는 요소다. 하지만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도전할 의미는 없다.

폭우 등 천재지변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최근엔 인공위성과 과학의 발달로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트레일러닝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아직 큰 인명사고는 없지만 산속에서 만나는 폭우는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제대로 장비를 갖추는 게 기본이지만 산악마라톤을 평소 연습할 때도 폭우가 예상되면 산속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의 영역’까지는 넘보지 않는 도전 문화가 새삼 중요해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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