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에 덴 게임업계 “신뢰가 생명”… 투명성 높이기 경쟁

신동진 기자

입력 2021-05-27 03:00 수정 2021-05-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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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홍역 후 자성 움직임
넥슨, 확률정보 공개 약속 지키고 알림판 통해 유저 건의 적극 답변
넷마블, 상식선에 맞는 확률 약속… 업계 “유저 신뢰와 평판은 무형자산”


넥슨은 지난달 메이플스토리 유저 간담회 이후 홈페이지에 ‘건의사항 알림판’을 만들어 개선 진행 상황과 일정을 공유하고 있다. 유튜브 등 화면 캡처

확률형 아이템으로 홍역을 치른 게임업계에서 유저들과 게임사 간 신뢰가 중요해지면서 재미나 그래픽 등 게임 요소 외에 투명성이 새로운 흥행 코드로 대두되는 모습이다.

넥슨은 이달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등 간판 게임 30개의 확률 정보를 공개했다. 3월 확률 전면 공개를 약속한 지 20일 만에 19개 게임의 아이템 합성(강화) 정보를 개방한 데 이어 나머지 게임들로 공개 범위를 넓힌 것이다.

넥슨이 유저들에게 약속한 나머지 사항들은 아직 시한이 남아있지만 수시로 이행 상황을 알리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건의사항 알림판’에는 지난달 11일 유저 간담회를 통해 제기된 379개 질의에 대한 답변이 개선 현황과 함께 정리돼 소개됐다. 각종 확률 요소가 실제 게임 안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한 검증 자료도 매달 게시한다. 넥슨은 올해 안으로 ‘확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넥슨은 또 이용자 대표들이 개발팀과 함께 회의하고 게임의 방향을 정하는 ‘메이플스토리 유저자문단’ 1기도 이달 초 발족했다.

넥슨은 1분기(1∼3월) 실적 보고서에서도 국내 확률형 아이템 논란 일지를 요약한 ‘한국 메이플스토리’ 섹션을 만들었다. 이 섹션에서 “투명성 개선과 공정성을 위한 소통을 지속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보는 글로벌 공시 자료에 사실상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을 약속하는 기록을 남긴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게임사들은 확률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작 발표 자리에선 투명한 정보 공개를 게임 차별화 요소로 부각하고 있다. 넷마블은 다음 달 출시될 신작 ‘제2의 나라’ 설명회에서 유저들이 게임 도중 모든 아이템 확률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사업 모델(BM) 도입을 알렸다. 넷마블 관계자는 “유저들이 보내온 항의 및 응원 트럭을 보며 진심으로 소통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확률 정보를 모두 공개하더라도 확률 자체가 너무 낮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적어도 유저 입장에서 납득이 가는 ‘상식선에서의 BM’과 확률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엔씨소프트 신작 ‘트릭스터M’의 희귀 아이템 확률을 실험한 유튜브 영상 장면. 유튜브 등 화면 캡처
유저들도 새로 나온 게임의 과금 체계와 확률형 아이템을 평가하고 확률을 자체 검증하며 게임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달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뒤를 이을 기대작으로 꼽힌 모바일 게임 ‘트릭스터M’을 출시하고 확률을 공개했다. 확률 정보를 확인한 유저들은 일부 고급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0.000013%에 불과해 로또 1등 확률(0.000012%)만큼 희박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게임 전문 유튜버들은 수백만 원어치를 ‘뽑기’해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는 영상을 실시간 중계했다.

과도한 게임 과금이 게임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게임업계의 ‘평판 리스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는 그간 비공개하던 합성(강화) 콘텐츠 확률을 공개하는 내용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통해 유저 사이에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면서 충성 고객이 한순간에 적으로 바뀌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유저들의 신뢰와 평판이 무형 자산이라는 점을 느끼고 있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BM을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려워 고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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