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불편’ 해소 위한 창업 봇물… 정부는 기존 제도로 신사업 규제

김하경 기자 , 이지윤 기자 ,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5-26 03:00 수정 2021-05-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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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청년 창업]<1> 청년 창업가들이 말하는 고충

《 청년 실업이 악화되는 반면 청년 창업은 활기를 띠고 있다. 가상현실. 모바일 인터넷 등 신기술 기반의 창업뿐 아니라 자영업 분야의 리스크 관리형 창업을 통해 꿈을 키우는 2030세대가 크게 늘어난 것. 청년 창업가들을 만나 그들이 쓰고 있는 도전의 역사를 들었다. 》




이현준 대표(37)는 2017년 8월 치매 조기진단 솔루션 사업을 하는 세븐포인트원을 창업했다. 홀몸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던 중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게 전환점이 됐다. 국내 요양시설이 대체로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기 힘든 현실임을 감안하면 VR 콘텐츠가 비용 대비 치매 개선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본 것이다. 이 대표는 콘텐츠 개발에 나선 지 약 2년 만에 VR로 치매 노인의 기억력을 자극하는 회상요법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현재 국내 대기업들과 협업하며 치매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청년들이 실생활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면서 ‘청년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20대 이하 창업기업은 10만9049개로 전년 대비 16.6% 증가했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30대가 대표인 창업 기업(41만1617개)도 7% 늘었다. 이창원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창업을 장려하는 문화와 지원제도가 확산되면서 청년들이 이전보다 쉽게 창업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진단했다.

○ ‘일상의 불편’에서 창업 아이디어 착안
“VR로 치매 예방에 기여하고파” 24일 서울 노원구 세븐포인트원 사무실에서 한 시연자(오른쪽)가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스마트케어 서비스를 체험해 보고 있다. 이현준 세븐포인트원 대표(왼쪽)가 VR 기기에서 상영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태블릿PC를 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동아일보는 청년 창업가들과 접촉해 그들이 도전하는 목표와 기업인으로서 겪은 애로를 들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상의 불편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창업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가들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발명가의 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었다.

디에이엘 정주원 대표(26)는 최근 여성들이 월경 패턴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용품과 의학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하며 창업했다. 창업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편견이었다. 월경이라는 말 자체를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장벽이었다. 정 대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해결해보고 싶다”고 했다.

맘편한세상 정지예 대표(34)는 부모들이 믿을 수 있는 아이돌보미를 쉽고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창업에 나선 것은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지인들의 절절한 고충을 접하면서다. 아이돌보미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가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정 대표는 기존 서비스와 달리 투명하게 아이돌보미의 각종 이력을 공개하고, 돌봄 대상을 신생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화했다. 정 대표는 “내가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퍼네이션 라서현 대표(26)는 기부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참여율은 저조한 MZ세대의 기부를 돕는 플랫폼 사업에 나섰다. 기존 기부 단체의 기부금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투명성 관련 문제를 해결하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단돈 100원이라도 기부를 이끌어내고 기부금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고안해냈지만 여전히 사업화 과정에 있다. 라 대표는 “각종 투자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기부라는 가치와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이라는 영역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 기업은 뛰는데 규제는 제자리걸음
차별화된 서비스로 창업에 도전한 청년들은 하나같이 크고 작은 규제 문제가 고민이라고 했다. 이들이 하는 사업은 이전에 없던 것들인데 정부는 기존의 제도로 사업을 규제하다 보니 충돌이 생긴다는 것이다.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서 신청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식물성 대체육을 생산하는 디보션푸드를 창업한 박형수 대표(32)가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식물성 대체육’에 대한 정의였다. 주요 사업 품목인 식물성 대체육은 사업 평가 주체에 따라 식품이 되기도 하고 바이오 물질이 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한번은 바이오 분야 전문가가 식물성 대체육을 ‘약’으로 간주하고 임상을 진행하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융합기술을 통한 새로운 소재 등에 대한 카테고리를 재정립하는 등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력난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안을 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은 ‘비건(vegan)’ 베이커리 사업을 하는 더브레드블루 문동진 대표(35)는 2017년 창업 후 늘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정부가 인건비 지원 사업으로 단순히 돈을 주기보다는 중소기업에 근무할 경우 각종 복지 혜택을 더해 주는 것이 장기 근무를 유도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창업 지원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길다는 지적도 많았다. 온라인 프로그래밍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코드잇 강영훈 대표(26)는 “정부의 재정 또는 행정 지원을 받기 위한 각종 절차가 너무 복잡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스타트업에 시간은 생명인데 정부 지원도 신속하게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청년들 위한 치킨 배달-포장 전문 매장, 창업비 절반 뚝… 금리 年1% 대출 연결도


BBQ 1년 만에 매장 300개 돌파
“자본 없는 청년들 경제독립 지원”


부부는 모두 여행업에 종사했다. 남편 원유필 씨(43)는 가이드로 현장을 뛰었고, 아내 윤희영 씨(41)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이들의 수입은 종전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지인이 창업을 권했지만 초기 투자금이 부담스러웠다.

BBQ 스마트 키친(BSK)의 한 점주가 자신의 점포에서 치킨 조리를 하고 있다. 제너시스BBQ 제공
그 무렵 제너시스BBQ의 ‘BBQ 스마트 키친(BSK)’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배달과 포장 전문 매장이라 큰 투자금이 들지 않았다. 내점객용 영업장이 없기 때문에 배후 가구가 많은 지역이라면 이른바 ‘목’이라고 불리는 상권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9월부터 BSK 부천중동점을 운영해온 원 씨는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제너시스BBQ가 지난해 6월 론칭한 BSK 매장이 약 1년 만인 이달 300호점을 넘어섰다. BSK는 소자본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 세대를 위해 선보인 배달·포장 전문 매장이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사업에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창업해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영점 테스트 결과 예상 수익률을 뛰어넘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후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SK는 내점 손님을 받는 일반 매장에 비해 창업비용이 절반 수준인 5000만 원 정도다. 임차료 등 고정비도 줄일 수 있다. ‘배달 전문 매장은 위생이 불안하다’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소비자들이 조리과정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쿠킹클래스 형태의 오픈 주방 시스템을 적용했다.

제너시스BBQ에 따르면 BSK 300여 개 점포 중 51%는 점주의 연령대가 20대와 30대다. 원 씨 부부처럼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첫 창업에서 실패를 경험한 이들도 있다. 취업 문이 좁아져 재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BSK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제너시스BBQ는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창업비용도 지원한다. 지난해 11월 하나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점포 창업을 희망하는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점포당 최대 5000만 원, 총 100억 원을 연 1%대의 금리로 빌려준다. BSK의 초기 투자금 전액을 초저금리로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신청자 100여 명 중 20, 30대가 60%에 이른다.

윤 회장은 “비록 작은 도움이지만 첫 출발에 힘을 보태는 마음으로 성공 사다리를 제공해 우리 사회 성장동력인 청년들이 미래를 위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이지윤 기자 /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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