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허진석]매년 되풀이 되는 ‘최저임금’ 갈등… 결정방식 개선 논의해야

허진석 논설위원

입력 2021-05-26 03:00 수정 2021-05-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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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초반부터 파행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4월 20일 첫 전원회의를 열고 심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반대한 공익위원의 유임에 반발해 2차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시작 단계부터 논의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DB
허진석 논설위원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 결정해야 하는 최저임금위원회 활동이 민노총의 18일 2차 전원회의 불참으로 초반부터 파행하고 있다. 민노총은 공익위원들이 지난 2년간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했는데 대부분이 유임되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회의에 불참했다. 아직 노사 양측의 공식적인 인상률 요구안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거진 분란이라 올해 노사 갈등이 더 심하게 표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이어서 근로자위원 측의 요구가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시급 1만 원’ 공약의 무산을 사과했었다. 매년 8월 5일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 해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1만원 이상” vs “삭감-동결”




사용자위원 측은 내달 초에 모여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2018년과 2019년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 여파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의 삭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대기업도 이미 많이 오른 최저임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과하다며 최소한 동결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60%대가 최고 수준인데, 이미 한국은 그 수준에 도달했고, 주요 7개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근로자위원 측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만 원 이상으로 큰 폭의 인상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코로나19로 위축되던 경제가 회복할 가능성이 높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최저임금에 이런 요인들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노총 측은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현실적인 심의가 이뤄져야 하고, 문재인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급격한 인상, 영세자영업 타격


문 정부 초기 2년간 29.1%에 이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컸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근로자 일자리가 위협을 받았다. 2018년의 가파른 인상으로 약 35만 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중앙대 강창희 교수)이 나오기도 했다. 영세 사업자와 그 고용인이 최저임금을 두고 다투는 모양이 되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을’들의 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컸다. 이후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다시 급격히 낮춰졌다.



급격히 높아진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영세 사업자에게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부담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미만율(최저임금 미만으로 급여를 받는 근로자 비율)은 2019년 16.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후 2020년에도 15.6%로 역대 2번째로 많았다.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에 불과했지만 한번 높아진 최저임금의 영향이 계속돼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많은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을 적용할 때 최소한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배경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현행 최저임금법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별이나 규모별, 나아가 나이별로 차등 적용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국가정책, 정부 결정을”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해 원칙적으로 합의에 의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988년 시행 이후 32번의 결정 중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7번뿐이다. 표결 25번 중에서도 노사 양측이 모두 참석한 경우는 8번에 불과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최저임금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용부는 2019년 2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가 객관적인 경제·사회 지표로 최저임금의 상·하한선을 정하면 노·사·공익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인상률을 확정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노사 반발 속에 자동 폐기된 상황이다.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도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여럿 계류 중이다. 이 중에는 정부(고용부)가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 국회에서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는 방안 등 다양한 방식이 올라 있다. 문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고용과 물가 등 경제지표에 영향을 주고, 수많은 근로자와 사용자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국가 정책’이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확정하는 재분배 정책이기도 하다. 급격한 인상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실업자에게 미치는 악영향 등 범사회적인 영향도 고려돼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노동시장에서 소외될 비정규직과 고령인력이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의 구조가 많이 변했다”며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정부가 결정하고, 그 근거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하며 책임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에서는 최저임금 결정 방식 개선이 주요 어젠다가 돼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의회, 프랑스는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각 나라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의회를 통과하는 법률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5년까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법적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발표다. 연방 최저임금과 달리 주별 최저임금을 허용하고 있어 지역별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셈이다.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2009년 7월 이후 12년째 동결이지만 캘리포니아(14달러), 워싱턴(13.69달러), 매사추세츠(13.5달러) 등 20개 주는 개별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노동장관이 ‘단체협상 국가위원회’ 의견을 들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단체협상 국가위원회에는 기업 규모별 고용주 대표 6명과 5대 주요 노조별 노동자 대표 10명이 참여한다. 먼저 전문가 그룹이 매년 국가위원회에 인상률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부는 국가 재정 및 경제 전반에 대한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한다. 이후 노동부가 위원회를 소집해 노사 대표 의견을 청취한 뒤 결정한다.

독일은 노사 2자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노사 양측 대표 위원 각 3명과 중립적 위원장 1명, 표결권 없이 자문만 담당하는 학계 인사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연방 통계청의 월별 임금 지표에 기반해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갱신 주기는 2년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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