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남긴 빚 5000만원에 ‘파산 낙인’ 여덟살 하정이

이소연 기자 , 조응형 기자

입력 2021-05-25 03:00:00 수정 2021-05-25 14: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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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1> 법이 보호 못한 ‘미성년 파산’
하늘나라 엄마가 남기고 간 빚, 빚이 뭔지도 모르는 딸에게 대물림
친권자-후견인 ‘빚 인지’ 석달안에 상속포기 신청 안하면 파산뿐
법 허점이 신용불량자 내몰아 6년간 미성년 80명 파산신청



여덟 살 하정이(가명)는 아빠 엄마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갚아야 할 빚이 5000만 원을 넘는다. 빚이 뭔지도 모른 채.

서울 금천구에 사는 하정이는 2019년 자신을 홀로 키우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장애로 거동조차 불편한 하정이의 외할아버지(69)는 손녀딸을 돌보려 곧장 법정 후견인 자격을 취득했다. 모진 세상, 가여운 손녀. 어떻게든 하정이를 지켜주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그해 겨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정이에게 ‘물려받은’ 빚이 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썼던 것. 매달 100여만 원씩 이자까지 더해지며 금액은 점점 불어났다.

“세상에 그런 법이 있는지 어찌 알았겠어요. 기초생활수급자에 몸까지 불편한 마당에. 딸 명의로 독촉장이 쏟아져도 그저 내가 책임지면 되겠거니 했지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한테 빚이 웬 말입니까.”

하정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개인파산’뿐이다. 기한 안에 상속을 포기하는 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빚을 갚을 책임을 면해도 5년 동안 신용불량이란 꼬리표가 달린다.

한국 사회에서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대법원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미성년자 78명이 파산을 신청했다. 올해도 3월까지 빚더미에 깔린 아이 2명이 파산 신청서를 냈다.

법의 허점이 하정이 같은 어린이를 파산으로 내몬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민법은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으면 친권자나 후견인이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상속포기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은 별다른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미성년자는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도록 법이 보호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해 11월 “법정대리인이 상속포기 및 한정승인 신청을 하지 않으면 미성년에겐 개인파산만 남는다.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제안은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늦게나마 국회에선 10일 미성년자가 상속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게 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은 “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는 전체 빚더미 아동 중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아이에게 빚까지 대물림하는 단순 승계주의를 고수하는 현행법은 개정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석달 지나면 빚 상속포기 못해… 法 모르는 아이들 보호장치 없어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부터 위로했던 아이예요. 엄마를 지켜주겠다면서. 그런데 1억 원 넘는 빚을 물려받았단 걸 알고 절망했어요. 지난달 결국 ‘엄마,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라고 하더군요.”

지난달 20일 오후 3시경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 지부.

13일 오후 대구에 있는 김유철(가명)군의 방 안. 어머니 도모 씨가 김 군의 침대에 앉아 지난해 11월 미성년인 김 군의 법정대리인으로 자신이 작성한 파산 진술서를 보고 있다. 김 군은 지난해 4월 아버지가 숨지면서 빚 1억3000여만 원을 물려받았다. 도 씨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적었다. 대구=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공단 소속 정경원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정 변호사가 담당하는 유철이(가명·18)의 개인파산 재판 담당 판사였다. 유철이는 별세한 아버지의 빚과 관련해 제때 상속포기 신청을 하지 못해 빚을 떠안았다. 판사는 “우리가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개인파산뿐이냐”며 안타까워했다.

정 변호사는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다 답했다. “…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판사도 변호사도 속상한 재판
판사가 사적 감정까지 내비친 속내를 정 변호사가 모를 리 없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11일 유철이의 파산 신청서를 접수시킬 때까지 수백 번 고민하고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봤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 길밖에 없었다.

유철이는 지난해 4월 20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심근경색이었다.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기울어진 사업을 되살리려 밤낮으로 애쓰다 변을 당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은 난파선처럼 파도에 휘몰려 다녔다.

같은 해 9월 8일. 숨진 남편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유철이의 어머니 도모 씨(52)가 정 변호사를 찾았다. 현행 민법은 부채를 지닌 이가 숨지면 직계비속·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대물림하도록 돼 있다. 이혼 상태였던 어머니 대신 유철이가 아버지 빚 1억3600만 원을 물려받았다.

문제는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었다. 빚을 포기하거나 빚을 제외한 재산만 물려받으려면, 상속 사실을 안 지 3개월 안에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 민법 1020조는 ‘미성년 상속인은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상속이 개시된 것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도 씨가 정 변호사를 찾아온 건 이미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법은 아이가 몰랐다는 사실을 배려해주지 않아요. 친권자인 어머니가 빚이 자녀에게 대물림됐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할 수 없는 시점이었죠. 아이는 자기 뜻과 무관하게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교생이 무슨 수로 1억 원이 한참 넘는 돈을 갚을 수 있겠어요. 빨리 파산신청을 해주는 수밖에요.”

사회생활도 해보지 못한 청소년을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재판. 관계자들은 모두가 마음이 아렸다. 담당판사가 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달 28일 담당판사는 법원 공보관을 통해 이런 뜻을 전해왔다.

“개인파산이 받아들여져 면책까지 된다 해도 한국신용정보원에 파산 정보가 통보됩니다. 5년간 금융거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곧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청년에게 그런 제약은 엄청난 굴레가 될 게 뻔했습니다. 자꾸만 마음이 쓰였습니다.”

○ “법 몰라 자식을 수렁에 빠뜨려”
“남편이 죽기 전부터 삶은 ‘지옥’이었어요. 제 명의로도 돈을 빌려 빚이 수천만 원까지 불어났거든요. 방법이 없어서 이혼까지 했던 거였는데. 저 힘든 건 괜찮아요. 하지만 자식까지 빚의 수렁에 빠뜨리게 될 줄이야….”

엄마는 유철이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 변호사가 “개인파산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을 때 그대로 까무러치기도 했다. 빚도 이혼도 모두 자기 잘못 같았다.

2018년 빚에 시달리다 남편과 헤어진 도 씨는 지금도 빚에 허덕인다. 매달 내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70만 원이 넘는다. 월세방 얻을 여력이 안 돼 친정 식구들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새벽 3시 우유배달을 하고, 아침이면 식당에서 주방 일을 했다. 몸이 부서질 듯했지만, 아이만은 건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빚이 유철이에게 대물림됐다는 소식에 세상이 무너졌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한 달 만에 체중이 7kg 가까이 빠졌다. 병원에서는 우울증 진단을 내려 치료약까지 먹어야 했다.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서 그런 법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속 포기든 뭐든 했겠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빚을 갚을 방법을 찾으려고 변호사를 찾아간 건데, 애가 개인파산을 해야 한다니 청천벽력이었어요. 유철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엄마가 몰라서 이 지경을 만들다니.”

도 씨는 지난해 11월 유철이의 개인 파산을 신청하며 대리인 자격으로 ‘지급 불능 경위서’를 작성했다. 꾹꾹 눌러 쓴 경위서에는 아들을 향한 마음의 빚이 가득했다.

‘아들은 (개인 파산 소식을 듣고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비를 걱정하며 어떻게든 국립대학에 가겠다고 합니다. 엄마인 저로서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가 제일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 빚에 치여 꿈마저 쪼그라든 아이
올해 고3 수험생이 된 유철이는 겉으로는 의젓하고 담담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도 씨가 “유철아, 엄마가 법을 몰라서 네가 개인파산을 하게 됐다”고 전하자 오히려 엄마를 위로했다고 한다.

“대뜸 ‘괜찮다’고 했어요. 자긴 그냥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된다고. 그럼 집세도 안 들고 학비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겠다고요. 군대도 좀 일찍 갔다 오면 낫지 않겠냐고도 했어요. 다만 엄마 혼자 두는 게 제일 걱정이라면서요.”

다행히 성실한 유철이는 무난히 국립대에 갈 성적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유철이가 꿈을 ‘국립대’로 잡은 건 사정이 있다. 유철이는 파산면책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즉시 복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신용정보원에 기록이 5년 동안 등재된다. 이럴 경우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며, 전월세 보증금 대출도 어렵다.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스스로 꿈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그 덤덤하던 애가 지난달 20일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빠 돌아가신 지 1주기를 맞아 성묘를 갔었는데, 갑자기 ‘엄마,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하더군요. 부모가 자식을 지켜줘야 하는데, 오히려 궁지로 내몬 게 아닌지. 너무 괴롭고 미안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단 생각만 들어요. 우리 유철이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유철이의 방에는 키 작은 장롱 하나가 있다. 유철이가 어릴 때부터 써오던 것이다. 장롱 한구석에는 유철이가 어린 시절 삐뚤삐뚤 쓴 낙서가 새겨져 있다. 정 변호사는 “빚의 대물림이 아직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새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한탄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조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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