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배달 투잡’하다 다치면 산재보상 받을 수 있을까?

송혜미 기자

입력 2021-05-25 03:00 수정 2021-05-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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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노동잡학사전]〈6〉산재가입과 보상적용

한 배달기사가 골목길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퇴근 뒤 배달을 하는 직장인 등 ‘배달 투잡족’이 늘어났지만 이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 적용을 받기 어려운 처지다. 동아일보DB
직장인 박민호(가명·35) 씨는 지난해부터 이른바 ‘투잡(부업)’으로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늘어나면서 퇴근 후에 배달 일을 하는 직장인이 많아졌죠. 박 씨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박 씨는 최근 빗길에 음식을 배달하다 넘어져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박 씨가 당한 사고는 산업재해로 인정돼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배달 투잡도 산재 보상 가능

모든 근로자는 일하다 다쳤을 때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업재해보험을 당연 적용받기 때문입니다. 보험료는 회사가 전액 부담합니다. 그렇다면 투잡으로 배달 일을 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이때도 일하다가 다쳤을 때 산재를 적용받을 수 있을까요.

원칙적으로는 안 됩니다. 근로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산재보험을 중복 적용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박 씨가 퇴근 후 단 하나의 업체를 통해서만 배달 일을 한다면, 특고라도 산재보험을 중복으로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다양한 업체를 통해 배달 업무를 받는다면 산재보험 인정이 어렵습니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전속성’입니다. 법적으로 배달원 등 특고는 근로자가 아닙니다. 근로자의 성격이 강한 자영업자죠. 근로자라면 누구나 산재를 적용받지만 특고는 산재 가입 기준을 법으로 정해놨습니다. 그중 하나가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라는 겁니다. 한 명의 사업주에게만 노무를 제공하는, 전속성이 있어야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본래 박 씨는 본업이 있는 만큼 전속성 기준을 충족할 수 없고, 따라서 배달 일에 대해선 산재보험 가입이 안 됩니다. 하지만 최근 박 씨처럼 특고로서 투잡을 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그 기준이 완화됐습니다. 특고라도 주된 사업장이 있다면 산재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특고가 아니라 낮밤 모두 일반 근로자로 투잡을 뛴다면 어떨까요. 이때는 산재보험 중복 적용이 가능합니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다가 저녁부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A 씨는 회사나 카페 어디서 다쳐도 산재 처리가 가능합니다.

만약 A 씨가 카페에서 일하다가 넘어져 3주간 모든 일을 쉰다고 하면 휴업급여로 평균임금의 70%를 지급받게 됩니다. 낮에 일하는 회사와 관계없는 카페에서 다치더라도 휴업급여는 회사와 카페 평균임금을 합산한 액수의 70%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고는 전속성 충족해야 산재 처리

지금까지는 투잡 근로자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전업으로 배달 일을 하는 B 씨는 사고가 나면 산재 보상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전속성이 문제입니다. B 씨는 하루 종일 같은 배달 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배달 건마다 의뢰한 업체가 다릅니다. 배달의민족을 통해 삼겹살을 배달했다가 요기요를 통해 커피를 배달하는 식이죠.

고용노동부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한 업체에서 벌어들이거나 전체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한 업체에 할애한 경우 전속성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합니다. 만약 B 씨가 하루 8시간 일하는데 그중 5시간을 요기요에서 들어온 배달 일을 한다면 B 씨는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겠죠. 단, 이 경우엔 배달의민족에서 들어온 배달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산재 처리가 어렵습니다.

만약 B 씨가 하루 8시간 일하면서 3시간은 요기요에서, 3시간은 배달의민족에서, 2시간은 쿠팡이츠에서 일한다면 B 씨는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어떤 업체를 대상으로도 산재보험 가입이 안 돼 일하다 다치면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합니다. 또 설령 특고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등 산재 가입이 가능한 14개 특고 업종이 아닌 경우에는 산재보험에 아예 가입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특고의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기 위해 전속성 기준 폐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에서 퇴근 후 배달을 하는 투잡족 박 씨도, 여러 업체와 계약해 일하는 배달기사 B 씨도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14개로 한정된 산재보험 적용 특고 직종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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