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160만 그루 피톤치드의 향연…숲길 탐방하려면[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입력 2021-05-22 09:56 수정 2021-05-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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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소나무
계곡물 위에 놓인 돌다리를 이리저리 건너 숲속으로 들어간다. 너삼밭 너머 화전민 마을을 지나고, 보부상이 다니던 길을 걷다 보니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마치 대나무 숲처럼 키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금강송(金剛松)의 바다. 온몸이 굽고 뒤틀린 ‘남산의 소나무’만 보고 살아온 이의 눈에는 20~30m 높이로 쭉쭉 뻗어 올라간 금강소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백 년 묵은 소나무에서는 5배 이상 쏟아진다는 피톤치드의 향연!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어 본다. 온 산에 가득한 솔 향의 맑은 기운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었다.

● 수백 년 살아 온 명품 소나무를 찾아서
2010년 산림청이 조성한 1호 숲길인 경북 울진군 소광리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이 8일 올해 처음으로 열렸다. 11월 30일까지 개방되는 이 숲길은 총 7개 구간(79.4km)으로 국내 최대 금강소나무 군락지답게 수령 30~5000년 된 금강송 160여만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1년에 7개월만 열리고 나머지 5개월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의 천국으로 보호하고 있는 지역이다.

13일 오전 9시 동양화가 백범영 교수(용인대)와 함께 ‘대왕소나무’를 볼 수 있는 4구간의 출발점에 섰다. 마을 주민인 장수봉 숲해설가(69)는 계곡을 건너 숲길을 걸으며 금강소나무뿐 아니라 굴참나무, 토종 자작나무부터 야생화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화전민과 보부상 이야기부터 태백산맥 깊은 숲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던 추억, 1968년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까지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약 2시간의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안일왕산(安逸王山·819m) 정상에서 수령 800년이 넘은 ‘대왕소나무’를 만났다. 부족국가 시대 강원 삼척 지역에 있던 실직국의 안일왕이 도피해 와서 세웠다는 산성 부근에서 자라고 있는 신송(神松)이다. 대왕소나무의 한쪽은 수백 년간의 태풍과 비바람에 가지가 많이 꺾였지만, 붉은색 몸체에서 뿜어내는 기운은 여전히 힘차고 신령스러웠다.

오백년소나무
금강소나무는 표면이 붉고 단단하다. 붉은색 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해지며, 밑둥치부터 회색 비늘이 생기다가 육각형의 거북 등딱지 모양으로 변한다. 소광리 주민들이 마련해준 산채나물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또 다른 명품 소나무를 찾아갔다.

오백년소나무
금강소나무숲길 가족탐방로에서 ‘오백년소나무’를 만났다. 조선 성종 때 태어나 수령 530년이 넘은 나무다. 가슴 높이 지름이 96㎝로 성인 두 명이 팔 벌려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다. 조용필이 부른 민요 ‘한오백년’의 꿈을 가뿐하게 뛰어넘은 이 소나무는 가지 위에 또 다른 생명을 넉넉하게 품었다. 오백년소나무의 가지 위에 새가 물어다 놓은 도토리가 싹을 틔워 갈참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자연의 위대한 공생을 느끼게 한다.

미인송


미인송
‘미인송(美人松)’은 울진 금강소나무를 대표하는 잘생긴 소나무였다. 수령 350년에 높이가 35m, 하늘로만 곧게 뻗은 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중간의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옹이를 수피로 덮어서 곧게 자라난다. 가지가 많으면 눈이 쌓여 부러질 위험도 크고, 키도 높이 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인송처럼 나무의 모양이 이등변삼각형처럼 날렵한 금강소나무는 궁궐의 기둥에 쓸 수 있는 최고의 소나무로 꼽히는 것이다.

못난이 소나무
그런데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못난이 소나무’였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처럼, 재목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령 530년이 넘도록 살아남은 소나무다. 이 소나무는 중간에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비틀어지고, 휘어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런데 쭉쭉 뻗은 미인송에 비해 왠지 정감이 가서, 백범영 교수와 함께 스케치북과 펜을 꺼내서 바위 위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못난이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세히 살펴보니 높은 비탈길의 중턱에서 자라고 있는 이 소나무는 마치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머리와 가슴, 팔이 있고, 한쪽으로 치우친 엉덩이부터 훤칠한 다리까지 완벽한 S라인 몸매였다. 게다가 아랫부분은 우아한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것이 패션모델을 연상케 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이 나무야말로 진정한 미인송이 아닐까? 집 근처에 있다면 가까이서 늘 지켜보고 싶은 나무였다.

● 조선 왕실이 보호하던 금강소나무 숲
금강소나무는 속살이 특유의 정결한 황금색을 띠고 있어 황장목(黃腸木)으로도 불린다. 수백 년간 송진이 뭉쳐서 생기는 황금색 심재(心材)는 수분이 적어서 잘 썩지 않고, 뒤틀리지 않게 버티는 힘도 좋다. 일반 소나무의 나이테 간격이 5~10mm라면 금강송은 1mm 남짓으로 촘촘하다. 그만큼 재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가격도 일반 목재의 15배에 이른다.

조선 시대에도 금강소나무는 궁궐을 짓거나 임금이나 왕세자의 관(棺)을 만들 때 많이 쓰였기 때문에 왕실에서 특별히 보호했다. 금강송은 백두대간을 따라 금강산, 강릉, 삼척, 울진, 봉화 일대에 분포하는데, 조선 숙종 때부터 금강소나무림을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해 관리했다. 소광리의 대광천 상류에 있는 ‘황장봉계표석’에는 일반인이 출입해 벌채를 하면 ‘곤장 100대의 중형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을 때도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166본이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쓰였다. 산림청은 2001년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에 소나무 226본, 2005년 낙산사 원통보전용 소나무 36본, 2007년 광화문 복원용 소나무 26본을 공급한 바 있다.

대왕소나무에서 조령성황사로 넘어오는 ‘샛재’ 고개 능선에는 지름이 80~90cm에 이르는 금강소나무에 노란 페인트칠로 번호를 새겨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숭례문 화재사고와 같이 국가문화재가 불에 타 소실될 경우 대체재로 쓰기 위해 국가에서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샛재 조령성황사
‘샛재’ 고개는 보부상들이 넘던 십이령 고개(울진 8개, 봉화 4개) 중의 하나다. 바지게꾼으로 불리는 그들은 울진에서 해산물을 잔뜩 지고 130리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봉화에서 농산물로 바꿔 다시 울진으로 돌아오는 고된 여로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다. 간고등어, 소금 등 80kg가량의 짐을 실은 바지게를 지는 보부상들은 주막집에서도 등짐을 못 내려놓고 짤막한 작대기에 기대 쉬기 때문에 ‘선질꾼’, ‘바지게꾼’이라고 불렸다. 샛재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장수봉 해설사는 ‘십이령 바지게꾼의 소리’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울음이 터질 듯 보부상의 애환을 담은 그의 목소리가 숲길에 우렁우렁 울려 퍼졌다.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을 언제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가노~ 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

●여행 정보=예약은 금강소나무 숲길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문의전화. 각 구간 하루에 최대 80명까지 예약. 숲해설가의 안내에 따라 코스마다 2~5시간 정도의 숲길을 걷는다. 각 구간 시작점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한 탐방객들은 점심에 숲길에서 현지 마을 주민들이 마련해 주는 자연식 도시락을 먹는다. 1구간은 ‘찬물내기’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4구간은 ‘대왕소나무’ 아래에서 현지 나물과 밥으로 구성한 자연식 도시락을 먹는다. 1인당 7000원.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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