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다 잃을 준비해야”…中이어 美-EU 가상화폐에 칼 빼들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입력 2021-05-21 17:16 수정 2021-05-21 18:18
동아일보 DB
“변동성이 매우 심하다. 투기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가상화폐를 산다면, 돈을 다 잃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
세계 각국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규제에 팔을 걷고 나서는 분위기다. 각종 가상화폐가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기뿐 아니라 세금 회피와 돈세탁 등 탈법 행위에도 동원되면서 이런 시장을 그냥 방치해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규제 당국이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재무부는 20일(현지 시간) 시가 1만 달러 이상의 가상화폐 거래는 반드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이나 ‘큰 손’ 투자자의 대규모 거래는 그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상화폐 매매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최근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바이낸스를 미 법무부와 국세청(IRS)이 자금세탁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도 ‘가상화폐 손보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많다.
미국의 가상화폐 규제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부분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올해 초 의회 상원 인준청문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비트코인은 매우 투기적 자산”이라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규제·감시를 담당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달 11일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거래가 매우 투기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관련 규제도 없고 사기나 조작 가능성도 있다”며 투자주의보를 발령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이달 초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가상 화폐의 급락 위험을 경고하며 우려를 표출했다.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를 아예 금지하겠다는 더 노골적인 규제를 알리고 나섰다. 중국은행업협회 등이 18일 발표한 공고문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가상화폐의 거래나 교환, 관련 서비스 제공 등을 포함한 어떤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원래도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단속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인 투자 열기로 중국에서도 불법 행위가 늘어나자 이대로 둘 경우 공산당 체제에 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고 철저히 단속하기로 했다.
중국은 더 나아가 가상화폐 채굴장 폐쇄에도 나서고 있다. 대형 채굴장이 몰려 있는 네이멍구자치구는 18일부터 채굴장 단속을 위한 신고센터 운영에 들어갔다. 가상화폐 채굴 기업뿐 아니라 이들에게 땅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까지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9월 ‘디지털자산 거래·발행 포괄적 규제’를 발표하고 규제 방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가상화폐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규제를 EU 27개 회원국에 동일하게 적용해 혼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상화폐를 EU의 금융 관련 법률로 규제하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감독기구도 새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중앙은행 차원에서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 시장에 난립하는 가상화폐의 힘을 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0일 미 연준은 올 여름에 디지털 화폐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이날 영상 메시지에서 “우리의 포커스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지불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폭넓은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도 지난달 19일 디지털 화폐에 대한 시범 업무를 위해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특별전담반을 출범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금융 당국도 최근 디지털 위안화 확대를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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