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그려진 사슴 벽화에 ‘사피엔스’ 번성의 비밀이…

김상운 기자

입력 2021-05-21 03:00 수정 2021-05-2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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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호모 사피엔스’ 展
강 건너는 사슴떼 표현한 상상력
네안데르탈인 멸종에 영향 미쳐
고인류 진화, 다양한 CG로 전시


사슴 다섯 마리가 떼를 지어 강물을 건너는 장면을 그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 사슴들의 목 아래로 석회암 자체의 물결무늬가 지나가고 있다. 암벽 형태를 강물에 빗댄 1만7000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 N. Aujoulat·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깊은 동굴 벽면에 검은색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뿔 달린 사슴 다섯 마리가 떼를 지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모두 목 윗부분만 그려져 있다는 것. 도대체 무얼 그린 걸까. 의문을 풀 실마리는 이 벽화가 그려진 암벽에 숨어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슴 목 부위로 석회암 특유의 물결무늬가 지나간다. 암벽의 독특한 자연 형태를 이용해 강물을 건너는 사슴 떼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8일 시작된 ‘호모 사피엔스’ 특별전의 압권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재현한 영상 코너다. 2부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 전시실 진입로에 동굴 암반 색상의 벽면을 설치한 뒤 빔 프로젝터로 유명 동굴 벽화들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투사했다. 강물을 건너는 사슴 떼를 그린 라스코 동굴 벽화는 1만7000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 벽면의 질감까지 이용한 이 벽화에 대해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사학)는 “인류가 이미지를 이용한 진일보한 지적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라스코를 비롯해 스페인의 알타미라, 프랑스의 쇼베 코스케 루피냐크 동굴 등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모두 3만2000∼1만3000년 전에 걸쳐 그려졌다.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때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와 상징을 이용한 의사소통과 협업을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으로 본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여러 동굴벽화들은 고도의 추상화 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충북 단양 수양개에서 발견된 ‘눈금 돌’ 유물이 눈길을 끈다. 약 4만 년 전에 다듬어진 걸로 보이는 20cm 길이의 자갈돌에 눈금 22개가 0.4cm 간격으로 촘촘히 새겨져 있다. 이를 놓고 부족 인원이나 날짜와 같은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이 같은 유형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건 수양개 눈금 돌이 처음이다.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눈금 돌은 호모 사피엔스가 머릿속 정보나 기억을 외부에 기록할 수 있게 된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 말미에는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이동한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패널이 나온다. 안락한 환경을 버리고 미지의 장소로 떠나도록 이들을 이끈 건 무엇일까. 바로 옆 우주시대의 개막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통해 인류의 끝없는 ‘호기심’이 그 원동력임을 짐작게 해 준다.

전시 끝 부분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영상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에서 관람객과 전시물 사이로 선이 연결된다. 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인류의 진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전임 배기동 관장이 역점을 둔 전시인데,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의 고인류 화석을 대여하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 대신 모션 캡처(사람의 동작을 인식하는 센서로 영상을 촬영한 것)나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9월 26일까지. 관람료는 3000∼5000원.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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