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팬데믹 온다… 백신 기업에 인센티브를”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05-20 03:00 수정 2021-05-2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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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국제금융포럼 기조연설하는 ‘2020 노벨 경제학상’ 폴 밀그럼 교수 인터뷰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6일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노벨 경제학상 상금은 퇴직연금에 넣었다”며 “인플레이션이 걱정되지만 단기간에 주식시장이 급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다음 팬데믹(대유행)에 대비하려면 백신을 비축하고 공급을 늘려야 한다. 더 많은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사진)는 16일(현지 시간)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것이 거의 확실하고 이에 잘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밀그럼 교수는 경제학의 게임이론과 경매이론의 대가로, 학문적 업적을 라디오 주파수 경매 등 현실 영역에 잘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7일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2021 동아국제금융포럼’의 기조 연사로 참여한다.

그는 “부자 나라만 백신을 빨리 맞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탔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 전직 국가수반들과 함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백신 지식재산권 보호를 유예해 달라는 내용의 공동서한도 보냈다. 밀그럼 교수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았다.

“경기 급격 회복속 인플레 걱정… 美 증시 단기급락 가능성은 낮아”

《폴 밀그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을 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기는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주식시장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진단했다. 밀그럼 교수는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할 위험은 있지만 수요는 계속되고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팬데믹 이후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옛날로 완전히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영역은 영원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앞으로도 우린 화상회의를 하고 원격 근무도 더 늘어날 것이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기업의 ‘린 생산(lean manufacturing)’ 모델은 달라질 것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비상시를 대비한 예비 공급에 더 의존하게 됐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많은 것들이 집으로 배달되면서 상점이나 식당에 가는 수고를 덜게 됐다.”

―팬데믹이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준비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이 계속될 게 거의 확실시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잘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는 과학자들이 놀랍게도 빨리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해 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백신을 빨리 접종하기 위한 제조 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백신을 비축해야 하고 비상 제조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부자 나라만 백신을 빨리 맞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탔다.”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도움이 될까.

“얼마 전에 노벨상 수상자들과 전직 국가수반들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백신 지재권 보호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동 서한을 보냈는데 나도 여기에 서명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요즘 언론에서는 백신 공급이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결국 장기적인 해법은 가능한 한 빨리, 더 많은 공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백신 공급에 ‘경매 이론’을 적용한다면….

“이걸 구상하기엔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단지 백신을 나눠주는 것보다는 백신 접종 권한을 부여하고 이걸 거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좋다. 그러면 우리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서 알맞은 백신을 맞게 된다. 가령 화이자 백신은 보관하려면 초저온 냉동고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시설이 없는 농촌이나 낙후된 지역에서는 유용하지 않다. 반면 1회만 맞으면 되는 백신은 사람들이 접종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도움이 된다.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시장 개입은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해 백신 제조 능력을 키운 회사, 짧은 시간에도 많은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예비 시설을 갖춘 곳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폴 밀그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2021 동아국제금융포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며 자필로 적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밀그럼 교수는 27일 포럼 기조연사로 나서 환경, 디지털 신기술, 가상화폐 등 금융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전할 예정이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금융업은 어떻게 변화할까.

“금융업은 매우 변화가 많은 분야다. 반드시 코로나19가 이 변화를 이끌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온라인·모바일 결제, 탈중앙화된 금융, 인공지능(AI)과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금융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 가상화폐에 투자해야 하나.

“비트코인이나 도지코인 등의 가치는 실질적인 어떤 것(자산)에도 연동되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변동이 심하며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것이다. 우선 가상화폐는 이제 금과 비슷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됐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계속 투자할 것이다. 가상화폐가 구현해낸 탈중앙화된 금융은 효율성이 높고 기존의 금융보다 더 잘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새로운 종류의 가상화폐가 생겨나면 지불결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화폐가 앞으로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로 진화하겠지만 말이다. 가상화폐는 중요한 혁신이다.”


―그래도 지금 비트코인 시세는 너무 높지 않나.


“물론 어떤 것에도 가치가 연동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할 리스크는 있다고 본다.”

―작년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했는데….

“난 좌든 우든, 증오를 조장하고 거짓말을 하며 과학을 불신하는 사람은 반대한다.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을,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했다. 트럼프를 싫어한 것은 그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온 나라를 찢어 놓고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경제 정책에 대해 말해 달라.


“경제 정책 면에서도 나는 좀 더 바이든 쪽에 가깝다. 지금 전 세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이고 감세는 이를 조장하는 면이 있다. 바이든의 정책이 일단 옳은 방향인 것 같다. 정부 재정으로 수조 달러를 지출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인프라 투자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국민총생산(GNP)도 팬데믹 기간에 뚝 떨어졌다가 지금은 전에 보기 힘든 속도로 반등했다.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을 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긴 한다.”

―이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까, 아니면 글로벌 경제에 장기적인 위협이 될까.

“확신할 수 없다. 다만 6 대 4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버텨주고 있어 위안이 된다.”

―단기간에 주식시장이 급락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에도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할까.

“미국이 예전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혁신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잘하고 있다.”

―미래를 지배할 신기술은 무엇이 될까.

“태양광이나 풍력에너지 등 기후변화에 관련된 기술들, 5세대(5G) 통신, 사물인터넷, AI, 바이오테크 등이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앞으로 일자리는 어떻게 변할까.

“슬프지만 우리는 자동화와 AI 때문에 많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옛날식으로 반복적이고 일상화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면 신기술과 AI를 이용하는 일자리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경제는 항상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일자리의 양 자체는 줄어들지 않을까.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예로 들어보면 이젠 나를 인터뷰하려고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날아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일을 더 빨리 하고도 같은 양의 생산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10세 자녀가 있다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배우게 해야 할까.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바이오테크나 통신기기, AI 등 여러 기술에 열려 있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도 엄청난 양의 일자리가 쏟아질 것이다.”

―앞으로 노벨상을 타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낙담하지 말라. 대담해야 한다. 분석을 주의 깊게 하되 쉽게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실패와 실수도 있겠지만 계속 정진해야 한다. 뭔가를 달성하려면 용감해야 하고 좌절하면 안 된다. 기회를 잡아야 한다.”

밀그럼 교수는 노벨상 상금을 어디에 썼느냐는 질문에 “퇴직연금에 넣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면 가족 등과 기념 파티를 하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스웨덴 여행을 가는 데 필요한 비용 외에는 노후를 대비해 아껴둘 계획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삶도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으면 좋긴 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수상을 딱히 준비하거나 맘에 두지는 않았다. 상을 받더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내 삶은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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